기타 18

사랑의 온도 - 2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휴일 오후였다. 창문틈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눈이 부셨다. 느지막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 쇼우네이가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걸어나왔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오자마자 거실 소파가 보였다. 소파 위에는 미노루가 앉아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도 따스한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얼굴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잘 잤어? 라며 익숙한 인사를 건네는 대신,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마침내 미노루의 한 발짝 뒤로 다가갔을 때, 쇼우네이가 두 팔을 넓게 벌려 미노루를 와락 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미노루가 어깨를 흠칫 떠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유치한 장난에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쇼우네이가 키들키들 웃었다..

기타 2023.05.01

사랑의 온도 -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휴일 오후였다. 창문틈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눈이 부셨다. 느지막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 미노루가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걸어나왔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오자마자 거실 소파가 보였다. 웬일로 먼저 일어나 앉아 있는 쇼우네이가 눈에 들어왔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도 따스한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잘 잤어? 쇼우네이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해 있었다. 쇼우네이의 눈이 저를 향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미노루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너는 잘 잤냐며 조금은 상투적인 인사를 마주 건넸다. 익숙한 몸짓으로 걸어가 쇼우네이의 옆자리에 앉으려던 그 때 커피포트 끓는 소리가 났다. 쇼우네이가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기타 2023.05.01

하루 틈의 고백

……미안, 쇼우네이. 지금 당장은 답을 들려 주지 못하겠어. 내 감정을 확신할 수가 없어서. 난 우리의 관계에서 불확실한 요소는 최대한 없애 두고 싶어. 그러니까 내게 시간을 조금 줄래?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쇼우네이가 조심스레 내게 진심을 전해 온 그 때, 나 스스로를 조금 원망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잘 하고 감정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 때의 나는 영락없는 겁쟁이였다. 지독하게도 서툴고, 그런 주제에 두려운 것도 많아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 한 발도 내딛지 못하는 겁쟁이. 그런 나는 쇼우네이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었음에도 그에 걸맞은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도망쳐 버렸다. 녀석을 그 자리에 세워 둔 채로. 사실 내 앞에도 단 한 걸음만이..

기타 2022.08.21

빛에 맞닿은 그림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종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대다수 과학자의 설명이었다. 각각의 생명체가 남기는 자손들 중 어떤 개체가 살아남을지를 자연이 선택해 종국에는 특정한 종의 성쇠를 결정한다. 참으로 냉정한 법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흡혈귀들이란 그리 축복받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햇빛에 약해 낮에는 굴이나 땅 속에 숨어 살아야 하면서도 밤에 자유로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어떠한 특질도 가지지 않았다. 다른 동물을 사냥하고 섭취해 살아가는 동물들은 희생양을 빠르게 잡아챌 수 있는 빠른 발이나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을 강력한 힘, 맹독, 그마저도 아니라면 기습을 위한 위장술이라도 가지고 태어나기 마련이었다. 흡혈귀들은 이 중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사냥감을 잡으면 근육과 피, 내장..

기타 2022.07.14

세 방울의 사랑

남자아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근사한 모든 것들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아카츠키 쇼우네이는 유달리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저 예쁘다,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히 아름다운, 꿈의 한 자락에서나 볼 법한 황홀한 것들에 종종 눈길을 주었다. 예컨대 햇빛을 받으면 호박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설탕 과자나 분홍빛을 한 스푼 더한 붉은 저녁녘의 구름, 예쁜 분홍빛과 보랏빛의 파스텔 가루를 흩어 놓은 듯 몽환적인 빛깔의 유니콘 따위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아카츠키 쇼우네이는 마법소년이 되었다. 그럴듯하게 꾸며낸 가짜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마법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세간에서는 마법을 날 때부터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특권이라 칭했다. 사전..

기타 2022.07.14

후회는 검은빛을 띤다

아카시라(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시곗바늘소리 / 후회 / 정장을 차려입고 오래된 옷에는 삶이 덧대어져 있다. 시간이 흘러 닳고 해어진 부분마다 감정이라 불리는 천이 기억의 실로 수놓아진다. 학창 시절 내내 입은 교복에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스며 있는 것처럼 옷마다 저마다의 시간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검은 정장에 얽힌 건 특별하다. 그 안에 깊이 배어든 건 장례식장의 기억이다. 장례식장 안을 소용돌이치듯 메우는 감정들은 옷 속에도 흠뻑 배어들었다. 슬픔, 울분, 절망, 미련, 회한……. 그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 것은 결국 후회다. 후회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의 총체다. 살아생전 못다 한 말, 상처를 주었던 일, 미처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에 대한 후회가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여러 갈래의 감정..

기타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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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다급한 주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른 대로 말하자면 아무도 없다고 단정짓기에는 어렵다. 나 또한 그 '아무'에 포함시켜 준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급하게나마 인사한 대상은 나라는 셈이 된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야옹- 하고 한 번 길게 울었다. 그것이야말로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있으면 있는 거지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며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집에서는 내가 예외로 취급받는 일이 잦다. 지금 밥 먹을 사람 있냐는 물음에 아무리 야옹- 하고 울어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아무도 없네.' 따위의 것이었으니 내가 내 위치에 대해 이토록 조심스럽게 생각한대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런고 하..

기타 202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