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세 방울의 사랑

이가미 2022. 7. 14. 00:10

남자아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근사한 모든 것들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아카츠키 쇼우네이는 유달리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저 예쁘다,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히 아름다운, 꿈의 한 자락에서나 볼 법한 황홀한 것들에 종종 눈길을 주었다. 예컨대 햇빛을 받으면 호박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설탕 과자나 분홍빛을 한 스푼 더한 붉은 저녁녘의 구름, 예쁜 분홍빛과 보랏빛의 파스텔 가루를 흩어 놓은 듯 몽환적인 빛깔의 유니콘 따위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아카츠키 쇼우네이는 마법소년이 되었다. 그럴듯하게 꾸며낸 가짜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마법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세간에서는 마법을 날 때부터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특권이라 칭했다. 사전을 펼쳐 보아도 '마력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술법' 따위의 지루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설명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쇼우네이는 코웃음쳤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마법은 단지 남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마음일 뿐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탐미를 반복하는 사람만이 끝내는 마법에까지 손을 뻗는다. 백 명 중 백 명이 허무맹랑하다 말할지라도 궁극의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마음 하나만을 에너지원 삼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 그에게는 그것이 곧 마법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마법에는 화려한 데가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요술봉에는 오색찬란한 보석이 박혀 빛을 받으면 사방으로 무지갯빛의 광채를 반사시켰다. 요술봉 끝에서 나가는 마법은 매끈한 기름에 몽환적인 빛깔의 파스텔과 진주를 곱게 갈아 갠 듯한 색을 띠었다. 마치 옅은 분홍빛과 보랏빛에 높다란 하늘의 색을 한 스푼, 따스한 햇살의 색을 또 한 스푼 섞은 듯 꿈결 같은 색이었다. 그는 그 마법과 같은 빛깔로 주변 물체를 물들일 줄 알았으며 또한 이를 즐겼다. 방의 이불과 베개에서부터 가장 좋아하는 유니콘 인형, 가끔 장난기가 돌 때는 수학 선생님의 가발까지. 요술봉을 한 번 휘두르면 어떤 물건이든 금세 쇼우네이가 좋아하는 예쁜 색으로 변했다. 처음으로 그 마법을 성공했을 때 기분이 어땠더라. 쇼우네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 곧 세상을 가지는 것이지, 무얼 더 바라겠는가. 그런 생각이었던 것도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뛸 듯이 기뻤다는 것이다.

 

"따분해……."

 

 분명 그랬었는데, 이렇게 빨리 질릴 줄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빛깔로 표현해내는 데까지 약 십 년이 걸렸다. 일생의 반 이상을 들여 얻어낸 결과물인데도 지겨워지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니. 이런 면에서는 인생이라는 것이 참으로 불공평했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색이라 한들 같은 색으로 도배된 물건을 주야장천 보고 있으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공주님 방처럼 꾸며 둔 방의 책상 앞에 놓인, 세밀한 장식이 새겨진 푹신한 크림색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밀어넣어 앉은 쇼우네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레이스가 달린 아름다운 빛깔의 침대도, 귀여운 유니콘이 그려진 벽지도 전부 지겨웠다. 원래대로라면 책상 앞에 앉을 때는 늘 요정처럼 예쁜 옷만을 입는 그였건만. 그 옷마저도 몸서리치게 지겨워진 나머지 곰돌이가 그려진 하늘색 레이스 원피스를 사 입어 버린 그였다. 적당히 예쁜 레이스가 달린 치마 따위는 귀여운 옷을 대충 주워입고 흉내만 내는 가짜 마법소년들에게나 어울리는 옷이라며 경멸했던 그였지만 지겨움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황홀하고 구역질이 나도록 지겨운 옷을 계속 입으면 그나마 사용할 수 있던 마법조차 탁하게 무뎌질 것만 같았다. 마력을 예리하게 유지하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수단이라도 이용해야 했다.

 책상 앞에 앉은 그는 하는 수 없이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것과는 달리 아주 새 책이었다. 마법을 더 깊이 공부한답시고 샀지만 두꺼운 책을 읽기 싫어 잘 펼쳐 보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새로운 마법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마법소년으로서의 수명은 끝이라는 직감이 경고등처럼 무섭게 울려댔으니 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책의 중간쯤,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첫 장부터 읽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한 책이었다. 눈까지 질끈 감고 비장한 몸짓으로 책을 편 그가 가늘게 실눈을 떠 펼쳐진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페이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의 눈이 곧바로 크게 뜨였다.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묘약.' 유레카, 그가 찾던 바로 그것이었다. 밑에는 그 약을 만들어 마신 사람은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빛깔을 자아낼 수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멀리했냐는 듯 쇼우네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책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책에 쓰인 제조법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했다. 기쁨 한 방울과 눈물 한 방울, 마지막으로 사랑 한 방울. 너무 간단한 것이 문제였다. 도대체 감정들을 어떻게 액체로 추출해 섞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기껏 찾은 게 이 따위라니. 쇼우네이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책을 거칠게 넘겼다. 분명 덮은 뒤 구석에 처박아 다시는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치 마법처럼, 쇼우네이의 손끝에 책장 한 페이지가 걸려 넘어갔다. 조금 전 보았던 묘약의 바로 다음 페이지였다. 그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감정을 추출하는 법'. 그 페이지를 발견한 쇼우네이는 허탈하다느니, 다시는 안 볼 것이라느니 하는 말을 전부 취소하고 언제 성을 냈냐는 듯 다시 책의 내용에 빠져들었다. 감정을 추출하는 법 또한 간단했다. 아주 강렬한 감정의 산물인 액체를 모으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 여전히 뚜렷하지는 않지만 조금 전보다는 막연함이 가신 것을 느끼며 쇼우네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쇼우네이는 등교할 때부터 입이 귀에 걸린 듯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어찌나 표정이 밝던지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뾰족한 송곳니까지 반짝여 보일 지경이었다. 요 며칠 내내 세상만사가 지겹다는 듯 우중충하기만 하던 그가 미소를 되찾자 주변인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네가 웬일이냐는 질문공세에도 "헹, 비밀이 있지!" 라고만 응수하고 더는 입을 열지 않는 쇼우네이를 급우들은 갸우뚱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수업이 시작한 뒤로도 쇼우네이는 영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간밤에 잠을 설쳐 가며 나름대로의 계획을 짰던 탓이었다. 밤에 마법서를 조금 더 뒤적이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을 발견한 것이 계획의 시작이었다.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면 사랑을 추출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동물이다. 얼마나 어리석냐 하니 사랑 하나에 울고 웃고 다 한다. 사랑이 있다면 기쁨과 슬픔 또한 쉽게 추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빠르게 청신호가 켜지는 것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그렇지만 조금 늦게 잠에 들었다. 그 탓에 수업 시간마다 눈꺼풀이 감겨 왔다. 그나마 도중에 잠깐 정신이 들 때는 계획을 실현할 방법을 물색하기 바빴다.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주문은 묘약과 달리 광선의 형태로 쏘아지는 마법이라 별다른 재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감정적인 동물인 인간의 감정을 조금 촉진할 뿐이니 편리한 것이 당연지사였다. 주문에 걸린 대상은 가장 처음 본 사람에게 아주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 점을 이용한 쇼우네이의 계획은 이렇다. 누군가 교실에 혼자 남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주문을 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가장 처음 보는 상대는 쇼우네이가 될 것이고, 그는 쇼우네이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 뒤 처음에는 그의 사랑에 보답하는 척하며 사랑과 기쁨을 추출한다. 그러다 그의 마음이 농익었을 때 이별을 선언해 슬픔을 추출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묘안이었다. 누군가 혼자 교실에 남기만을 기다리며 쇼우네이는 다시금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는 교실이 텅 비어 있었다. 놀란 쇼우네이가 몸을 퍼뜩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창문 밖의 하늘은 붉은빛을 띠었다. 수업 시간에 잠시 눈만 붙이려다 깊이 잠들어 하교 시간이 지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에이 씨, 망했네.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쇼우네이가 머리를 벅벅 헝클어뜨리며 긁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없으니 사랑의 마법은 꼼짝없이 다음 날 시도해야 했다. 포기하고 하교하기 위해 쇼우네이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한 사람이 쇼우네이의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과 급우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벽 기둥 뒤 가장 구석진 책상에 급우 하나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희고 짧은 머리칼에 뒤덮인 동그란 머리를 보니 시라유키 미노루임이 분명했다. 그와는 평소 그리 친하지도, 그렇다고 사이가 아주 나쁘지도 않았다. 유치원에 다닐 적에는 조금 더 놀리는 맛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몇 년 전쯤부터인가 무슨 짓을 해도 반응이 심드렁해서 재미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 재미있다며 줄곧 놀려댔던 탓에 앙금이 남았는지 단순히 안 맞는 것인지는 몰라도 영 친해지질 않았다. 쇼우네이가 아는 지금의 미노루는 늘 잠을 자거나 특유의 건조한 투로 한두 마디씩을 툭툭 하곤 하는, 무난하면서도 재미없는 애였다. 하교 시간을 놓친 자신보다도 더 늦게까지 깨어나지 못한 모습이 신기한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처럼 끝도 없이 자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저 혼자 남은 사람이 있다는 점이 감사할 뿐이었다. 남자라는 것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쇼우네이는 하루도 지체하고 싶지 않을 만큼 들떠 있었다.

 문득 사랑에 빠진 시라유키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저 무표정하고 심드렁한 녀석이 어찌할 수조차 없이 깊고 깊은, 마치 수렁과도 같은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 헤어나오기는커녕 그 사랑을 떨쳐낼 생각조차 못한 채로 무력하게 홀려 있는 얼굴은 어떨까.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결심이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쇼우네이가 또렷이 미노루를 바라보았다. 품에 감추어 둔 요술봉을 꺼내 조용히 주문을 읊조렸다.

 

*

 

끼이익.

 

 날카롭고 불쾌한 소리에 쇼우네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살피던 쇼우네이가 이내 사색이 되었다. 맙소사. 사랑의 마법이 미노루의 앞자리 녀석이 책상에 놓아 두고 간 거울에 적중한 모양이었다. 광선의 형태로 쏘아지는 마법인데도 응축된 물리력이 상당했는지 거울에는 금이 가 있었다.

 사실 거울에 금이 간 것쯤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남의 거울이야 알 바 아니고, 누구의 짓인지도 모를 테니 어물쩍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단 하나. 그 마법이 거울에 맞았다는 데 있었다. 저도 모르게 미노루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만 쇼우네이는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느꼈다.

 

분명 미노루에게만 적중했어야 할 마법의 일부가 거울에 반사되어 쇼우네이에게까지 적중한 것이다.

 

 미노루를 보자마자 가슴 속 깊은 곳이 요동치듯 일렁였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벅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당장 무언가를 토해 내고 싶은데 토해 낸 것이 그리 흉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매우 이상한 느낌이었다.

 속이 울렁이다못해 메슥거리는데도 미노루에게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분명 전혀 눈에 띄는 구석 없이 평범한 녀석이었는데 다시 보니 빚은 듯 아름다워 보였다. 투명하게 빛나는 흰 머리칼과 감긴 눈, 길게 드리워진 흰 속눈썹, 작고 오뚝한 코와 얇은 분홍빛 입술. 오밀조밀하게 자리한 이목구비 전부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빨려들어가듯 사랑에 빠질 줄은 몰랐다. 마법의 힘을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마법의 해제법은 간단했다. 사랑의 마법을 다시 한 번 걸면 대상에게 걸려 있던 마법의 힘이 사라진다.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더 마법을 걸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조금만 더 미노루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아마도 미노루가 처음 보는 사람 역시 쇼우네이일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연스럽게 쇼우네이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한 쌍의 죽고 못 사는 연인이 생길 뿐이다. 정말 갑작스럽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아는 데서 오는 공허함만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랑이 전부 거짓이라는 사실은 자신만이 알아야 할 비밀이었다. 미노루에게조차 발설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공허함은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저주였다.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이가 결국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울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모든 것이 거짓된 감정임을 아는 상태로, 어찌할 수조차 없이 깊고 깊은 수렁과도 같은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수렁 안에는 자신을 유혹하는 달콤함이 가득차 일렁였다. 허우적거리다 익사할 것만 같으면서도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가장 덜 아프게 저주를 풀 기회가 지금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쇼우네이는 미노루의 앞자리 의자를 빼어 걸터앉았다. 당장 미노루를 깨워 자신을 보게 하면 더 편리하겠지만 단잠을 자는 미노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사랑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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