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올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다급한 주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른 대로 말하자면 아무도 없다고 단정짓기에는 어렵다. 나 또한 그 '아무'에 포함시켜 준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급하게나마 인사한 대상은 나라는 셈이 된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야옹- 하고 한 번 길게 울었다. 그것이야말로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있으면 있는 거지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며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집에서는 내가 예외로 취급받는 일이 잦다. 지금 밥 먹을 사람 있냐는 물음에 아무리 야옹- 하고 울어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아무도 없네.' 따위의 것이었으니 내가 내 위치에 대해 이토록 조심스럽게 생각한대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런고 하니 아마도 내가 이 집안의 다른 이들과는 많이 달라서이리라. 여기 있는 다른 개체-보통 사람이라 칭하는 것 같고, 나는 주인이라 부른다-들은 전부 커다랗고 털 없이 매끈하며 두 발로 걷는다. 울음소리도 불규칙하고 다양해서 알아듣기 쉽지 않은데 그들끼리는 또 이해하는 모양이다. 물론 나 역시도 그들과 오래 함께했다 보니 일상적인 소리는 대강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다. 예컨대 조금 전 주인이 외치고 나간, 다녀올게, 같은 소리 말이다.
각설하고, 나는 많은 경우 그들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고양이는 구성원으로 쳐 주지 않는 건지 몇 번이고 물었지만 그들은 내 말은 들은체만체하고는 턱이나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와 같은 일이 열 번째 반복될 즈음 나는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남은 것은 추측뿐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짓고는 더 이상 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크기가 작다든가 울음소리가 다르다든가 하는 사소한 이유로 나를 멋대로 제외시키다니, 하여간 사람이란 융통성 없는 주제에 제멋대로이기까지 하다. 아량이 넓은 내가 그들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사실은 지금부터라도 나를 그 '아무'에 포함시켜 준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할 생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함께 장을 보러 나가자든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든가 하는 울음에 응답하는 것은 대개 나뿐인 것만 봐도 나는 제법 쓸모있는 존재임이 확실하니 그들로서도 나쁠 것 없는 제안일 거다. 그렇지만 뭐, 그렇게 해 주지 않는대도 상관없다. 나는 함께 사는 그들이 애타게 누군가를 찾아도 그 소리를 못 들은 체하면 될 뿐이니까. 정말로 상관없다.
나와 함께 사는 그들에 대해 조금만 소개해 보자면, 우선 그들은 가족이라 불리는 공동체라 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의 서열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크기가 제일 크고 낮은 울음소리를 가진 사람이 가장 강한 것 같고 크기가 가장 작고 높은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이 그 다음인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는 몰라도 둘의 차이는 아주 근소한 것 같다. 그 다음, 서열이 가장 낮은 사람은 앞선 둘의 중간쯤 되는 특징을 가진 사람이다. 목소리는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으면서도 적당히 가볍고, 크기는 제법 컸지만 가장 큰 주인만 못했다. 나는 이들 셋을 순서대로 큰 주인, 둘째 주인, 막내 주인이라 부른다. 물론 이는 엄밀히 말해 그렇다는 것일 뿐, 대부분의 경우 막내 주인은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주인이라고 부른다.
내가 세 주인들 중 가장 서열이 낮고 힘이 없어 보이는 막내 주인을 주인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가 나를 이 집으로 데려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집으로 오게 된 경위는 말하자면 꽤나 길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게는 엄마도 있었고, 나와 비슷한 작고 흰 녀석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세간에서는 형제라고들 하는 것 같다). 그들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하다못해 희미하기까지 하지만 어쩐지 아직도 그들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한편 시큰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엄마와 형제들과 지내던 시절의 내게는 주인도 있었다. 지금의 주인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그는 엄마가 우리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안 것은 그 때로부터 몇 달 후. 내가 지금 주인의 집에 정착한 지 서너 달쯤 후의 일이다. 그가 결국 우리를 길에 내놓은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무척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나와 내 형제들이 많이 생겼을 때도 놀라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키워 보려고 애를 쓰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마도 끝끝내 힘이 부쳤던 것이겠지. 나랑 내 형제들을 길에 내어 놓으면서도 따뜻한 담요와 밥, 장난감을 상자에 함께 챙겨 넣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울었으니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그와 함께 있을 우리 엄마는 불행할 테니까. 비슷한 이유로 나와 함께 나온 녀석들을 주워 간 사람들도 착한 사람들일 거다. 내 형제들은 모두 하나둘씩 나보다 먼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간 뒤로 다시 차디찬 길바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누군가의 집에서 잘 살고 있겠지. 지금 주인의 집에 눌러 사는 나처럼 말이다.
나는 함께 길거리로 나앉은 형제들 중 마지막으로 그 곳을 벗어났다. 아마도 함께 털을 맞대며 온기를 나누던 형제들이 하나씩 사라져갈 때마다 어린 나이에도 사무치는 공허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나를 데려간 건 지금으로부터 꽤나 오래전의 어린 주인이었다. 그 날따라 비까지 내렸다. 담요 밑으로 숨어 보아도 거센 빗줄기에 담요마저 축축하게 젖어 버리는 날씨였던 것도 같다.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인 몸에 찬 빗줄기가 스며 뼛속까지 아리던 그 감각이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음에도 오래지 않아 내가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숨이 빠르게 꺼져가는 것을 가만히 느끼던 그 때 다가온 것이 바로 지금의 주인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들어 있는 상자 쪽에 우산을 기울여 주던 그 눈망울이 어찌나 맑고 커 보이던지. 자그마한 두 손으로 내 몸을 안아 올릴 때는 미약하게나마 나를 덥혀 주는 온기에 얼어붙어 있던 몸이 그때서야 미약하게나마 떨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를 들어올린 채로 한참을 들여다보던 주인은 결국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비를 맞지 않도록 신경을 써 주었는지 빗줄기가 더는 몸에 스미지 않았다.
이윽고 주인이 나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이전에 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따뜻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주인은 급히 수건으로 내 몸의 물기를 닦아 주고 따뜻하게 덥힌 우유도 젖병에 담아 먹여 주었다(이것 때문에 배탈이 나서 고생했지만 그 마음만은 높이 산다). 적당히 내 배를 채운 뒤에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커다란 기계로 몸을 말려 준 뒤 침대에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따스함에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난다. 그 평온함도 잠시뿐이었지만 말이다. 이내 집에 들어와 나를 발견한 둘째 주인의 기겁에 나는 그만 다시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이 길거리 생활을 얼마나 버텨 줄지 불투명했다. 추위가 감각을 조금씩 잠식해 심장 박동을 느려지게 했다. 한없이 나른하게 눈이 감겨 오는 동시에 정말로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아 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열고 있었다.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분명 그랬어야 했건만. 얼마 뒤, 멀리서 급히 뛰어오는 한 인영이 어슴푸레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자그마한 그는 조금 전 나를 집으로 데려갔던 주인이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주체하지조차 못하고 헐떡이는 그 모습에 조금씩 꺼져가던 의식이 다시금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주인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모습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느새 발갛게 충혈된 눈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그렁그렁 맺히다 못해 흘러내렸다. 마침내 어린 주인이 내 눈앞에 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내 둘째 주인인 어미와 설전에 가까운 설득 끝에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던 것이리라.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단번에 그 모든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만큼이나 엉망이 된 얼굴이었다. 감각이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나를 다시 한 번 안아 올린 주인이 훌쩍이며 띄엄띄엄 꺼내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 너, 데려가는, 거, 허락, 받았으니까…….
"이제 같이 살자."
분명 인간이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내게는 울음소리로만 들린다. 그러나 그 한 마디만큼은 내 귀와 마음을 단번에 열어젖힐 만큼이나 선명한 말소리였다. 그 목소리에서, 동시에 나를 꼭 안던 그 손의 힘에서 말할 수 없는 다정함을 느꼈다.
어찌됐든 그렇게 된 일이 지금까지 온 거다. 조금 전에 말했듯 여기서 지낸 지는 꽤 되었다. 따스하다가도 이따금 쌀쌀하던 날씨가 무더워지고, 다시 싸늘해지고, 이내 온 세상이 얼어붙을 듯 추워지기를 여덟 번쯤 반복했던가. 몇 번째 이후로는 세는 것을 그만두어 기억은 잘 안 난다. 그 시간 동안 알아낸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일단 내 이름은 미노루인 모양이다. 나를 데려오던 날 눈이 채 녹기 전인데도 붉고 자그마한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한 모습을 보았다나. 그래서인지 내 이름은 미노루(実)가 되었다. 사실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이 나를 바라보면서 미노루- 라며 부를 때가 많기 때문에 하는 추측일 뿐이다. 그 밖에도 알아낸 것은 그 누구보다도 둘째 주인에게 밉보이면 여기서 지내기 고달프다는 사실이나 둘째 주인과 주인은 사이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니 눈치를 봐 가면서 지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내가 알게 된 주인의 특징 중 하나는 특이한 소리가 나는 물건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모든 물건은 제각기 가진 소리가 있지만 주인이 가진 것 중에는 조금 더 특별한 물건이 있다. 기다랗고 복잡하게 생겼는데 주인이 그걸 불 때마다 제법 큰 소리가 나서 번번이 놀라고 만다. 주인은 그 반응이 재미있는지 내가 멍하니 있거나 졸 때 가끔 그 물건을 쓴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일부러 그러는 거다. 평소에는 자기 일 챙기기 바쁘면서 장난 칠 때만 갑자기 내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 퍽 언짢다. 읽던 책 위에 앉으면 짜증만 내고 다리 위에 앉으면 눈길도 안 주면서 무관심에 지쳐 잠들려 하면 갑자기 소리를 내 놀래키기나 하고. 부아가 치밀어 올라앉아 있던 주인의 다리를 앞발로 마구 밀어내도 재미있다고 웃기만 한다. 그럴 때는 참 이상하다.
아무튼 그 물건과 나는 애증의 관계다. 그 물건이 나를 놀리는 데자주 사용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주인이 그 물건을 손에 제대로 쥐면 딴 세상에라도 간 듯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앉았다 엎드렸다 눕기를 반복하며 자세를 몇 번이고 고치고 주인의 다리를 꾹꾹 눌러 보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그 물건과 앞에 놓인 종이만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아무리 야옹 야옹 울어도 그 물건이 내는 커다란 소리가 내 울음을 죄다 집어삼키고 만다. 때로는 심통이 나 주인이 눈을 떼지 않는 종이 위에 앉아도 보았지만 주인은 한숨을 쉬며 나를 들어 옮길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 물건은 주인으로부터 나를 상대하는 시간을 아주 많이 빼앗는 적이다.
그래도 완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다. 그 물건이 내는 소리는 무식하게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음색도 매력적이고 나름대로의 울림도 있으니 말이다. 주인의 다리나 옷에 매달려 놀다가 지쳐 졸리기 시작할 때쯤 들으면 나른하기도 하고 기분이 퍽 좋다. 또, 무엇보다도…… 그 물건을 손에 든 주인은 꽤나 멋지다. 주인이 그 물건을 불기 시작하면 늘 가볍게 툭툭 튀는 것 같던 공기가 조심스레 가라앉는 것이 수염의 떨림을 타고 느껴져 나를 작게나마 전율하게 한다. 집중한 듯 내리깐 눈이나 그 물건의 소리 외에는 전부 침묵을 유지하는 듯한 고요함도 제법 사랑스럽다. 그래서 놀아 달라고 울다가도 그 소리와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닫아 버린 적도 적잖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조연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그 사실이 기분 좋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래서 한 번은 소리가 멎은 뒤 주인에게 부끄럽지만 멋있었다고 말해 주기도 했는데 주인은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대답 대신 가만히 내 등허리를 쓰다듬기나 하는 주인에게 다시는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손길 또한 나쁘지는 않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