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여름밤의 별하늘

이가미 2022. 8. 22. 09:34

“여름철의 대삼각형은 알타이르와 베가, 데네브…….”

 

 찜통이 된 교실 안에 무미건조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퍼졌다. 꼭 수면제를 탄 것처럼 나른한 목소리였다. 무더위에 지친 학생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픽픽 쓰러지는 와중에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수십여 분이 지나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멀쩡히 앉아 있는 학생이 드물 지경이었다.

 그 멀쩡한 학생들 중 하나가 바로 쇼우네이였다. 사실 쇼우네이가 지구과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별자리 이야기를 유심히 들은 건 단 하나, 그의 연인인 시라유키 미노루 때문이었다. 밤 산책을 즐기는 쇼우네이와 달리 미노루는 어째서인지 밤을 유독 거북해했다. 쇼우네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였지만 그가 어둡고 광활한 밤하늘을 시각적으로 두려워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미노루에게 밤이 지구의 얼마나 아름다운 이면인지 알려 주고 싶었다. 태양빛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 온 세상이 암흑에 휩싸일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일을 시작해 사회 경험이 많은 미노루는 일견 어른스럽고 많은 것을 아는 것 같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처음부터 가르쳐 줘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런 미숙한 면마저 귀여워 보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미노루에게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 날 밤에는 유독 하늘이 맑았다. 어찌나 맑은지 은하수를 이루는 별 하나하나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고개를 한껏 치켜든 쇼우네이가 저 먼 곳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짚어 보았다. 그러기를 수 분, 결국 그는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업 시간에 들었던 별자리들을 찾고 싶은데 도통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일을 마친 미노루를 데리고 나온 뒤 밤하늘을 보여주며 저게 바로 거문고자리다, 백조자리와 독수리자리, 거문고자리의 별 하나씩을 이은 것이 바로 여름철 대삼각형이다, 따위의 이야기를 멋있게 들려주고 싶었다. 조금 민망해지면 너는 수업 시간에 자느라 모르지 않냐며 얼버무리면 그만이었다. 분명 그런 계획을 세웠건만, 현실은 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백조나 거문고 모양의 별자리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목이 꺾일 듯이 욱신거릴 즈음이 되어서야 쇼우네이는 별자리 찾기를 그만두었다.

 때마침 미노루의 퇴근 시간도 가까워 왔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지나가듯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어 몸을 흠칫 떨며 놀라고 말았다. 도통 들어오지 않는 저를 이상하게 여긴 미노루가 먼저 나온 모양이었다. 거기서 뭐 해? 그리 묻는 목소리에 티 나게 얼버무린 쇼우네이가 다짜고짜 미노루의 손을 낚아채듯이 잡았다. 또다시 뭐 하는 거냐며 묻는 말을 못 들은 척 넘기고는 한 발씩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평소보다도 빠른 발걸음이었다.

 둘의 퇴근길 중간쯤에는 큰 나무 몇 그루가 가지를 드리운 곳이 있었다. 여름철에 고개를 들면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로 하늘이 들여다보이는 곳이었다. 나무 이파리들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때보다 더 좁고 깊어서 쇼우네이는 그곳을 지날 때면 꼭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 날도 습관처럼 그랬다.

 그 때, 하늘에 수놓아져 있던 별무리들이 한두 개씩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장담컨대 우연이었다. 아마도 하늘은 쇼우네이의 편인 모양이었다.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인 쇼우네이가 손가락을 들어 나무 틈새로 비친 하늘을 가리켰다.

 

“미노루, 하늘 좀 봐 봐. 엄청 예쁘지 않냐.”

 

 다른 누군가가 밤하늘을 보라 이야기한다면 사양했을 미노루였건만, 그 날따라 쇼우네이의 말대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쇼우네이가 눈에 담은 풍경을 함께 보고 싶기도, 쇼우네이와 한 쪽 손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기도 했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고개를 들어올리던 미노루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한 조각 불안함이 깃들었던 그 얼굴은 이내 순수한 감탄으로 바뀌었다.

 쏟아질 듯이 많은 별이 밤하늘에 가득 흩뿌려져 있었다. 빛이 검은 하늘을 가득 메워 어둠이 자리잡을 틈조차 없어 보였다. 우주에 있는 수천억 개의 별 중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별은 몇 개나 될까.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미노루의 눈에는 수만 개의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별이 어찌나 많은지 눈을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빛나는 수백 개의 점들이 깜박이며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기를 보아도 별, 눈동자를 굴려 저기를 보아도 별.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 중 몇몇은 빛나는 꼬리를 늘어뜨리며 지평선 너머 어딘가로 떨어졌다. 또 어떤 곳에서는 작디작은 수만 개의 별이 모여 반짝이는 길을 내고 있었다. 별빛을 한데 모아 뿌려 둔 듯한 은하수였다. 늘 기분 나쁘게 일렁이던 칠흑 같은 하늘은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빛을 품고 있었다. 

 밤하늘을 은은히 밝히던 별빛은 나뭇잎 위에 내려앉았다. 그 중 일부만이 둘이 선 땅 위까지 도달했다. 나뭇잎 그림자가 지지 않은 곳은 가로등을 켠 것마냥 밝았다. 그러나 가로등처럼 붉은기를 띠는 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희고, 조금은 따스한 것이 꼭 조명 같았다. 하늘에서 쇼우네이와 미노루 둘을 향해 조명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짝이는 천체들의 따스한 시선을 받으며 미노루의 얼굴에도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빛이 한데 박힌 듯 미노루의 두 눈이 수정구슬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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