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다시 한 번 하굣길

이가미 2022. 8. 22. 09:33

 아카츠키 쇼우네이와 시라유키 미노루가 연인으로서 만남을 가진 지 일 년이 가까워 왔다. 둘의 일 년은 한마디로 갈등과 합의의 연속이었다.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둘이 기적적으로 강한 끌림을 느껴 맺은 관계인 만큼 안정되는 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이를테면 둘은 삶의 속도부터 달랐다. 물리적인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속도까지도 그랬다. 쇼우네이는 매사에 빠른 편이었고 미노루는 쇼우네이에 비해 처졌다. 연인과 발맞춰 걷고 싶었던 미노루는 늘 시라유키 교통법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저보다 앞서 가는 쇼우네이를 붙잡곤 했다.

 그러나 뒤이어 이야기할 문제에 비하면 물리적인 속도 따위야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쇼우네이는 무슨 일이든 간에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을 편안해했다. 마음을 표출하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뭐든지 빨랐다. 이에 반해 미노루는 감정적으로 느린 편이었다. 감정이 끓어오르는 데도, 한 번 솟아오른 감정을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런 차이 탓에 둘의 갈등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띠었다. 모종의 이유 -대부분의 경우 정반대인 서로의 성향- 로 다툼이 벌어진다. 쇼우네이는 시원하게 한 번 싸우더라도 얼른 마음을 터놓고 화해하고 싶어한다. 그에 비해 미노루는 조금 더 천천히 감정을 갈무리해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한다. 쇼우네이는 일을 질질 끌고 해결을 보지 않는 미노루 탓에 불안해했고, 미노루는 날것의 감정을 품은 채 즉각적으로 부딪쳐 오는 쇼우네이를 보며 착잡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일 년간 빚었던 수많은 갈등과 화해가 헛되지만은 않았던 탓일까, 둘은 어느새부턴가 서로의 차이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두 명 다 납득할 수 있는 나름의 합의점을 찾기도 했다.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줄 수 있는(필요한) 시간은 최대 이틀. 얼마나 큰 싸움이 벌어졌든 간에 이틀 안에는 해결하자는 뜻이기도, 이틀 동안은 화를 억누르고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자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다툼이 벌어져도 쇼우네이는 얼른 해결하자며 미노루를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이 정리되면 오라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자리를 피해 준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쇼우네이만이 아니었다. 미노루 또한, 비록 이틀의 말미를 얻었지만 최대한 빠르게 쇼우네이를 찾아가 풀어 보려 했다. 어떻게든 이틀까지 끌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같았다.

 물리적인 차이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쇼우네이는 조금 더 천천히, 미노루는 조금 더 빨리 걸으면 그만이었다. 아카츠키 쇼우네이의 속도는 낮아졌고 반대로 시라유키 교통법의 규정 속도는 높아졌다. 비록 한 쪽은 답답하고 한 쪽은 숨이 찼지만 나란히 걸음을 맞추며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결과만으로도 가치 있는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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