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꿈 연작 - 2

이가미 2022. 8. 21. 01:43

 마지막으로 창문을 열고 잠든 지 몇 달이 지났다. 그 때 감기에 호되게 걸려 결석까지 한 뒤로 날이 완전히 풀리기까지 창문을 열지 않기로 했건만. 창문을 열지 않은 날부터 미노루는 밤마다 쇼우네이가 그리워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곤 했다. 그런 상태였으니 당분간은 창문을 열지 않겠다는 몇 달 전의 결심이 쉽게 무뎌지는 것도 당연했다.

 결국 날이 채 따뜻해지기도 전인 삼 월 말경에 다시 창문을 열었다. 봄이 완연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쌀쌀한 시기였다. 방 창문으로 바로 보이는 벚나무도 봉오리를 몇 개 맺었을 뿐, 미처 꽃을 틔우기도 전이었다. 창문을 열자 여전히 찬 밤바람에 흔들리는 벚꽃 봉오리들이 옅은 향을 내며 미노루를 간질였다. 그 모습이 마음을 어지러이 흩어 둘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또다시 새벽 세 시쯤 인기척이 들려 눈을 떴다. 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도 쇼우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날이 조금 풀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창문을 열어젖힌 것처럼 쇼우네이 또한 미노루가 창문을 열기만을 기다려 온 것 같았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본 얼굴인데도 오랜만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쩐지 애틋하고도 그리운 마음에 한참이나 쇼우네이의 얼굴에 눈길이 머물렀다.

 미노루의 시선이 이윽고 쇼우네이의 몸에 가 닿았다. 봄기운 탓인지 전보다 한층 얇은 옷을 걸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셔츠는 속이 비쳐 보일 듯이 얇았고, 그마저도 단추가 잠겨 있지 않았다. 과장 좀 보태서 아키타와 남자들의 몸을 전부 한 번씩은 봤던 미노루였건만, 가슴께를 열어젖힌 연인의 모습은 새삼스레 심장을 뛰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눈을 어디 둬야 할 지 모르겠는 한편으로는 곁눈질로나마 찬찬히 뜯어보고 싶었다. 그런 미노루의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쇼우네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쇼우네이가 들어오자 어느새 만개한 벚꽃잎이 흩날리며 창 안으로 날아들었다. 어느 틈에 성큼 다가온 쇼우네이가 미노루의 손에 제 손을 살며시 겹쳤다. 그와 동시에 쇼우네이의 얼굴이 미노루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쇼우네이가 즐겨 뿌리는 향수의 묵직한 향이 훅 끼쳤다.

 

“나 보고 싶었어?”

 

 속삭이듯 묻는 쇼우네이의 목소리가 미노루의 귓가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촉촉한 열기를 띤 목소리에 미노루가 잘게 몸서리쳤다. 뜨거운 입김이 귀를 타고 몸 구석구석까지 퍼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벌거벗겨진 채로 쇼우네이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부끄러운 느낌에 온몸에 홧홧하게 열기가 퍼져나갔다. 쇼우네이의 손가락이 손을 타고 팔로, 어깨로, 목덜미로 올라올 때마다 닿은 곳이 불에 덴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쇼우네이는 손가락으로 미노루를 가지고 놀면서도 그 시선만큼은 집요하게 미노루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미노루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미노루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할 마음도, 솔직하게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할 대담함도 없었던 탓이다.

 다소 미적지근한 반응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쇼우네이가 싱긋 웃어 보였다. 한껏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이 입보다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어서였다는 사실을 미노루는 알지 못했다. 나도 보고 싶었어. 야살스레 덧붙인 쇼우네이가 이윽고 팔로 미노루의 뒷덜미를 감싸더니 조용히 간격을 좁혀 왔다. 체리마냥 붉은 쇼우네이의 입술이 그날따라 유리알처럼 빛났다. 어느덧 둘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할 즈음, 쇼우네이는 다가가는 것을 멈추고 씨익 웃었다. 마치 도발하는 듯한 미소에 애가 탔다. 남은 거리는 네가 와 봐. 속삭이듯 말하는 쇼우네이의 목소리에 미노루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쇼우네이와 입술이 닿기까지 남은 거리는 약 일 센티. 아주 좁으면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거리였다. 미노루가 망설이는 동안에도 쇼우네이는 차분히 기다렸다. 미노루의 반응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침내 미노루가 천천히 쇼우네이에게로 다가섰다.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듯 느릿한 움직임에 속이 탈 법도 했건만, 쇼우네이는 여전히 야릇한 미소를 띤 채였다. 눈을 질끈 감은 미노루는 어느 정도 이상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분명 닿고 싶어서 다가가는 것이면서도 실제로 닿아 버릴까 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미노루에게 한 발 나아가 주지 못할 쇼우네이가 아니었다. 쇼우네이는 이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미노루와의 거리를 능청스럽게 좁혀 장난스럽게 입술을 맞댔다. 시작이 장난스러웠던 것과는 달리 둘의 입맞춤은 진득하고도 달콤하게 이어졌다. 미노루의 입 안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훑는 쇼우네이의 혀에 조심스럽게 뒤로 뺀 미노루의 혀가 맞닿았다. 두 혀끝이 입 안에서 톡톡 맞닿다가도 이내 부드럽게 풀리며 뿌리까지 얽어들었다. 끈적하게 얽히던 혀가 이내 풀어지고, 미끈한 쇼우네이의 혀가 부드럽고 따뜻한 미노루의 입 안을 이리저리 굴리듯 희롱하기 시작했다. 미노루는 서툴게 혀를 놀리는 대신 쇼우네이의 움직임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새하얘지는 황홀경에 도취될 것만 같았다. 이제는 그만 떨어져 달라며 쇼우네이의 팔을 툭툭 칠 때였다.

 

따르릉, 따르르르릉…….

 익숙한 알람 소리에 미노루가 잠에서 깼다. 새벽 다섯 시였다. 새벽 세 시에 시작된 쇼우네이의 만남은 이번에도 꿈이었고, 어김없이 알람 소리를 듣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알람을 끄려고 뒤척이는데 온통 땀에 젖은 잠옷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밤새 땀을 어지간히도 흘려댄 모양이었다. 온 몸이 화끈거리면서도 끈적한 것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목욕탕에 가기 전 간단하게라도 샤워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노루는 끈적한 몸을 일으켜 목욕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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