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새해 첫 날

이가미 2022. 8. 21. 01:42

 새해 첫 날 오전에 느지막이 일어나는 건 처음이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몸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더니 때는 이미 아홉 시였다. 눈을 뜨자 이미 창문 틈으로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기에는 너무 충분히 잤다. 시원하게 기지개나 한 번 켠 미노루가 옆에 누운 쇼우네이 쪽을 내려다보았다. 쇼우네이는 여전히 꿈나라 여행 중인 듯 미동도 없었다. 쇼우네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전날 밤 생각이 났다. 둘 다 새해 첫 여행을 너무나 기대한 나머지 의견이 충돌해 싸움까지 났었던 밤이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물론 새해가 오기 몇 분 전에 극적으로 잘 풀었지만 쇼우네이의 얼굴을 다시 보니 어쩐지 조금 얄미운 마음이 들어 곤히 자고 있는 볼을 쿡 찌르자 짜증 섞인 잠투정이 돌아왔다. 미안하면서도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적당히 짐을 싸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잠에서 깬 쇼우네이가 미노루에게로 비척비척 다가왔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 신사엔 언제 가? 반쯤 잠긴 목소리로 묻는 것이 퍽 우스워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전날 밤, 극적인 화해를 한 뒤 둘은 오전에 함께 신사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신경 쓰고 있었구나. 조금 흐뭇한 마음에 잠이 덜 깬 쇼우네이의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었다. 너 준비되면 출발할 거야. 그리 덧붙인 미노루가 마저 짐을 싸기 시작함과 동시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쇼우네이가 씻는 소리였다. 일어나자마자 잠투정도 안 부리고 성실하게 씻는 것을 보니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오전에 같이 산에 가자던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려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져 쇼우네이 몫의 짐도 깔끔하게 싸 주었다.

 어째 아침부터 처음인 것투성이였다. 새해 첫날 아침을 느지막이 시작한 것도 모자라 케이블 카를 타고 산에 오르기까지. 분명 많은 처음을 쇼우네이에게 주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여러 모양으로 자신의 처음을 잘도 가져가는 모습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저 스스로야말로 아주 많이 변한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맞춰가는 과정은 끊임없는 양보와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 결과 미노루 또한 몇 번씩이나 새로운 경험을 해내려가고 있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산 중턱에 있는 신사에 도착하자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따스한 겨울 오전의 공기가 둘을 감쌌다. 덧붙이자면 열한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신사에 온 것도 처음이었다. 그동안 새해 첫날, 신사 앞에서 느꼈던 공기는 늘 차갑고 상쾌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새벽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신사 앞에서 따스하게 내리쬐는 오전의 햇살을 받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둘의 차례가 다가왔다. 한 발을 성큼 내딛어 소원을 비는 곳에 나아갔다. 옆에는 쇼우네이가 자리잡은 듯, 자신보다 조금 더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나란히 서서 소원을 비는 것도 처음이었다. 동전을 넣고, 박수를 두 번 치고 눈을 감은 다음 들리지 않게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올 한 해 건강하고, 주변인 모두 무탈하고…… 매년 빌던 상투적인 소원을 습관적으로 읊어내려가다 옆에 있는 쇼우네이가 신경 쓰여 한 마디 덧붙였다. 옆에 있는 녀석과도 사이가 깊어지게 해 주세요. 그런 소원을 빌어 본 것 또한 처음이었다.

 새해 첫 날은 한 해의 묵은때를 벗고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새로운 마음가짐이나 목표를 하나씩 품는다. 그러나 미노루는, 분명 마음을 새롭게 하자는 다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몇 번이고 처음을 써내려가게 되었다. 순전히 옆에 있는 쇼우네이 덕이었다. 쇼우네이는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달리 말하면 고일 대로 고인 미노루의 일상에 불어 온 새로운 바람이었다.

 간밤에 내리던 눈이 여전히 얕게 흩날렸다. 가만히 소원을 비는 쇼우네이와 미노루의 머리칼에도 흰 눈송이가 하나둘씩 내려앉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임은 아득한 먼 곳의 일인 양, 자신과 쇼우네이 두 사람의 숨소리와 눈이 내려 폭폭 쌓이는 소리만이 미노루의 귓가에 닿았다. 문득 옆에 있는 쇼우네이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묻지 않기로 했다. 분명 쇼우네이의 소원도 저 때문에 조금은 달라졌을 터였다. 저도 모르게 슬며시 떠오르는 미소를 참지 않은 채로 미노루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1주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이트데이  (0) 2022.08.21
꿈 연작 - 2  (0) 2022.08.21
첫 키스  (0) 2022.08.21
설원 데이트  (0) 2022.08.21
빼빼로 데이  (0) 20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