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 주만의 데이트였지만 쇼우네이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주체하지 못하고 푹푹 쉬어댈 만큼이나 심란했다. 정작 나란히 걷던 미노루 -문제의 원흉- 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성탄절 장식물에 감탄하고만 있었다. 성탄 전야를 맞아 온 거리가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로 북적였다. 모두 하나같이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퍽 행복해 보였다. 심지어 늘상 표정이 거기서 거기인 미노루조차도 풀어진 얼굴로 실실 웃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 가운데,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이유로 잔뜩 골이 난 사람은 사람은 쇼우네이뿐일 터였다.
본디 종교 지도자의 탄생을 축하하던 성탄절은 어느샌가부터 연인들의 날로 변모했다. 성탄절 바람이 코끝을 스치기 시작할 때부터 온갖 미디어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연인과 함께 찾을 만한 장소, 분위기 있는 식당, 주고받을 만한 선물 등. 모두가 연인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에 들떠 있었다. 쇼우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성탄절을 맞아 미노루와 함께 데이트 약속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분위기 있는 식당을 예약하고, 데이트 코스를 준비해 두기까지 했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무엇을 위한 준비였냐 하면, 아마도 누군가는 흑심이 묻어난다며 야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쇼우네이는 성탄 전야, 온 세상이 연인 사이를 응원하는 그 날 미노루와 분위기 있는 첫 키스를 하고 싶었다. 아마도 타이밍은 미노루를 집으로 들여보내기 직전. 가로등 불빛이 살짝 비껴간 곳에서 남몰래 입을 맞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헤어질 생각이었다. 흑심이라는 말을 부인할 수는 없었지만 사귄 지 백 일이 넘었으니 그 정도는 괜찮지 싶었다. 도리어 많이 늦은 감도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함께 거리를 걷던 중, 때마침 모 지방 방송국의 제작진이 거리에 비치해 둔 패널을 발견했을 때 쇼우네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패널에는 연인과의 키스를 나눠 본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쓰여 있었고 예, 와 아니오, 라는 대답이 적힌 두 칸 중 한 곳에 스티커를 붙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끌고 갈 기회였다. 쇼우네이가 저거 재미있어 보이지 않냐며 미노루를 자연스럽게 패널 앞으로 이끌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재바른 손길로 스티커까지 떼어 붙이라며 건넸다. 미노루와 자신은 아니오 쪽에 스티커를 붙일 것이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 사귄 지 백 일이 넘었는데 키스도 한 번 안 해 봤네~ 같은 말을 하면 될 것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자연스러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미노루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웬걸, 미노루가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예 쪽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부터는 데이트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자신을 만나기 전에 언제, 어떤 놈과 먼저 입을 맞춘 건지 알고 싶으면서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연애를 해 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처음이 아니라는 게 속상하기만 했다. 미노루가 두 다리를 걸칠 리는 없을 테니 쇼우네이 이전에 누군가를 만났어도 특별히 지탄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미노루와 저는 불과 몇 주 전에 서로의 처음을 가져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다. 자신에게는 처음인 많은 것들이 미노루에게는 처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니 이제 와서 씁쓸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 날 애써 준비한 데이트는 물거품이 됐다. 분명 만날 때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쇼우네이는 시종일관 멍하거나 퉁명스러웠고, 미노루는 중간쯤부터 이상해 보이는 쇼우네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데려다 주기로 한 곳도 두 군데쯤 빼먹었고, 데이트는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끝이 났다. 대충 시간을 맞춰 아키타와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조금 후회했었던 것도 같다. 조금이라도 더 잘 했어야 자신이 전 애인보다 낫다는 생각이라도 할 텐데, 감정에 휘둘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배에서 내려 미노루의 집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는 둘 사이에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말을 꺼내려다가도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탓에 망설여져서였다. 기분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연인과의 데이트를 망치고 집까지 바래다 주는 길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숨막히고 어색한 길일 거다. 미노루의 집까지 걷는 몇 분간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마침내 눈앞에 미노루의 집이 나타났고, 쇼우네이는 마지막으로 어떻게 미노루를 보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가라는 한 마디만 가볍게 하는 것이 최선이려나,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려나.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중 미노루가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미노루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낀 쇼우네이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슬그머니 미노루 쪽을 돌아보자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미노루의 얼굴이 보였다. 그때서야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이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돌이켜야 할지 몰랐다. 아무 말 없이 굳은 채로 선 쇼우네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미노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어쩐지 오늘…….”
너답지 않았어. 한참이나 말을 고르던 미노루는 겨우 한 마디를 덧붙이고는 다시 잠잠해졌다. 자신이 보였던 추태를 너답지 않다는 한 마디만으로 포장해 준 미노루에게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선뜻 사과하기에는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미안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텐데, 결국 입에서는 생뚱맞은 말이 나와 버리고 만다.
“......나 전에 사귀던 사람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무나 갑작스러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미노루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생각해 보면 되묻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미노루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쇼우네이가 말을 이었다.
“아까 스티커 붙일 때. 키스 해 봤다며.”
“그건…….”
너랑 한 거잖아. 어느새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꺼낸 미노루의 말에 이번에는 쇼우네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쇼우네이가 기억하기로는 둘은 단 한 번도 키스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
“그게……. 얼마 전에 목욕탕에서도 한 번 했고, 집에서도 했고…….”
생각도 하기 전에 튀어나간 의문에 미노루는 머뭇거리며 겨우 말을 쥐어짜냈다. 약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것이 한눈에 보였다. 미노루의 말에 따르면 둘은 몇 번쯤 키스를 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언제? 잠시 고민하던 쇼우네이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너 키스가 뭔지 알긴 하냐?”
그 물음에 미노루는 거의 울상이 되어서는 뽀뽀랑 똑같은 거잖아, 라며 힘겹게 한 마디를 꺼냈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사건의 전말을 알아챈 쇼우네이가 입꼬리를 올려 픽 웃었다. 아마도 미노루는 그간 몇 번쯤 했던 뽀뽀를 키스로 혼동한 모양이었다. 쑥맥이 따로 없었다. 그 덕에 마음고생을 꽤나 했지만 미노루가 키스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순진하다는 사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도리어 기분이 좋아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미노루는 여전히 부끄러워하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전까지 죽상이던 쇼우네이가 갑자기 실실 웃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쇼우네이가 야, 하며 입을 열었다.
“해 볼래?”
밤이 늦은 시간, 미노루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길. 한껏 분위기를 잡고는 은근슬쩍 멋있는 말을 꺼내 미노루를 근처 나무 같은 곳에 기대게 한다. 그 다음에 조용히 다가가, 평소보다도 진한 입맞춤을 한다. 이것이 쇼우네이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계획 따위 산산조각이 났고, 쇼우네이의 입에서는 멋없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멋대로 튀어나와 버렸다. 그 말에 긍정하지 않았지만 달리 부정도 않는 미노루의 턱을 조심스레 잡고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는 미노루의 모습을 긍정의 신호로 생각하기로 했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이내 코끝이 닿을 때쯤 고개를 조금 기울인다. 서로의 숨결이 윗입술에 스칠 때쯤 조심스레 다가가 입술을 맞댄다. 여기까지는 이전에도 하던 대로였다. 뽀뽀와 키스의 차이는 이 다음부터였다.
쇼우네이는 미노루가 입맞춤에 집중한 틈을 타 혀로 입술 사이를 비집어 열었다. 미노루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도 같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혀를 마저 밀어넣었다. 이윽고 미노루의 입이 무방비하게 벌어지고, 고른 치아와 입 안의 부드러운 살이 쇼우네이의 혀에 차례로 닿았다. 제 입 안에서 멋대로 움직이는 쇼우네이의 혀를 피해 보려는 듯 미노루가 고개를 움직이는 것도 같았지만 그리 강하게 저항하지는 않는 듯싶기도 했다.
미노루의 입 안을 열어젖혀 구석구석을 탐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른다. 불과 몇 초 같기도 했고, 몇 분 같기도 했다. 쇼우네이는 여전히 바들거리는 미노루에게서 천천히 입을 뗐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한 충족감 같은 것이 마음 속을 꽉 채우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