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빼빼로 데이

이가미 2022. 8. 21. 01:38

 시라유키 미노루는 빼빼로 데이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제아무리 편의점마다 빼빼로를 큼지막하게 진열하고 장식해 두어도, 또 같은 반 친구들이 빼빼로 데이라며 부산을 떨어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고도 하지 않던가. 어린 나이부터 상업에 뛰어든 미노루에게 빼빼로 데이는 제과 회사의 상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노루네 목욕탕이 사람이 몰리는 축제 시즌에 맞춰 할인 행사나 이벤트 탕 등을 준비하는 것처럼, 그들도 다른 기념일과 적당한 간격을 둔 만만한 날을 골라 자신들의 과자를 선전하는 것뿐이었다. 11.11이라는 글자가 그들이 판매하는 과자와 같은 모양이니 그나마 의미 부여 하나는 꽤 잘 했다 싶었다.

 평생 그럴 줄 알았건만. 빼빼로 데이 당일, 등굣길에 만난 쇼우네이의 손에 빼빼로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생각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그 순간, 내색은 않았지만 가슴이 얼마나 요동쳤는지 모른다. 그때서야 미노루는 깨달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제과 회사의 뻔한 상술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모두가 알면서도 당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연인의 선물을 앞에서 상술 따위에 당하지 말라며 냉정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제아무리 냉철한 이일지라도 한껏 들떠서는 내 거냐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노루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단지 쇼우네이 앞에서 헤벌쭉 풀어지지 않도록 표정을 묘하게 굳히고 있을 뿐, 속내는 여느 누구와 같았다.

 쇼우네이의 손에 들린 빼빼로를 본 순간부터 미노루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누구에게 주려는 것일까. 빼빼로를 보고 한껏 들떠 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면 상실감이 꽤나 클 것이 뻔했다. 그 때부터 미노루는 쇼우네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행여나 수업 시간에 남몰래 누군가에게 주기라도 할까 걱정이 돼서 수업 시간에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쉬는 시간에도 은근슬쩍 쇼우네이의 곁에 붙어 그의 동향에 집중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무색하게도 쇼우네이는 그 누구에게도 빼빼로를 주지 않았다. 이따금 반 친구들에게 너희는 빼빼로 못 받았냐며 시비를 걸었을 뿐, 자기 것은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어쩐지 허탈해 헛웃음이 나왔다. 괜히 하루종일 마음을 쓰느라 하교하기도 전부터 지쳤다. 학교에서 숙면을 취하지도 못해 피곤한 채로 밤 내내 일해야 했다. 교복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는 몇 번이고 한숨이 나왔던 것도 같다.

 그날 밤은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틈틈이 청소를 하거나 매점에 재고를 채워 넣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피곤한 몸은 어떻게든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한시바삐 움직인 덕분에 시간은 잘도 가서 시곗바늘은 어느새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의 퇴근 시간을 약간 넘긴 시간이었다. 손님들을 전부 돌려보낸 뒤 마감 준비를 얼추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짤랑, 하는 출입문 종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매일 밤 저를 데리러 오던 쇼우네이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기대감을 갖고 출입문 쪽을 흘끔거리는데, 역시나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쇼우네이였다. 쇼우네이는 빠르게 뛰어온 듯 평소보다 숨을 거세게 몰아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아침에 본 것과 같은 빼빼로를 든 채였다.

 빼빼로가 여전히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니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는 묘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다른 누군가에게 주었다 한들 뭐 어떤가. 빼빼로데이는 연인들만의 기념일이 아니었다.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나, 심지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도 얼마든지 빼빼로를 건네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침에 본 그 빼빼로를 꼭 자신이 받고 싶다는 생각은 도대체 왜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연애라는 것은 어찌나 복잡미묘한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생각도 불쑥불쑥 들게 했다.

 빼빼로 쪽에 눈길이 쏠린 것이 어지간히도 티가 났나 보다. 그렇게 갖고 싶냐? 하는 쇼우네이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미노루의 눈앞에 빼빼로 포장지가 내밀어졌다. 불쑥 다가오는 모양새에 놀라 고개를 뒤로 빼니 쇼우네이가 장난스럽게 키득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얄밉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쇼우네이가 빼빼로를 건네 주려던 대상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고마워. 간단한 감사 인사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빼빼로를 받아 드는 미노루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것도 잠시, 쇼우네이가 얄궂게 입을 열었다.

 

“내 건 없냐? 너만 홀랑 받아먹고 난 안 주는 거냐?”

 

 쇼우네이의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쇼우네이의 빼빼로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제가 줄 것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쉰 쇼우네이가 미노루에게 준 빼빼로를 휙 낚아채 갔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쇼우네이를 바라보는데, 이에 아랑곳 않고 종이 곽을 뜯더니 속 비닐까지 열어 막대 과자 하나를 집어 드는 거다. 쇼우네이 몫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가도 막상 눈앞에서 빼앗기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찌나 기가 막힌지 왜 다시 가져가냐는 말도 목구멍에 걸린 듯 나오지 않았다. 그런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는지 쇼우네이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자, 여기. 됐냐?”

 

 그리 말한 쇼우네이는 조금 전에 집은 막대과자의 끝부분을 미노루의 입에 밀어넣었다. 초코가 묻지 않은 부분을 입에 넣어 준 것이 쇼우네이 나름대로의 배려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입 안에 과자가 들어왔으니 더 이상 무어라 말을 꺼낼 수도 없어 가만히 과자 끝만 물고 있는데, 쇼우네이의 얼굴이 성큼 다가왔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쇼우네이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쇼우네이는 막대 과자의 반대편 끝을 문 채 야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윽고 오독, 오독, 과자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심할 새도 없이, 쇼우네이가 과자를 끝부터 베어먹으며 미노루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노루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굴려 보지만 어느새 코끝이 닿을 만큼이나 가까워진 쇼우네이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쇼우네이는 멈출 줄 모르고 점점 다가왔고, 이내 맞닿은 코가 걸린다는 듯 고개를 슬며시 기울였다. 그 때였다.

 오독, 소리를 내며 미노루가 앞니로 막대과자를 끊었다. 초코가 발라진 부분까지는 채 도달하지도 못했다. 쇼우네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눈앞에서 끊어진 과자를 끝까지 베어 먹었다. 덕분에 잘 먹었다? 얄미운 투로 그리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과장되게 입맛을 다신 쇼우네이가 미노루의 손에 막대 과자 봉지를 다시 쥐여 줄 때까지도 미노루는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불과 몇 초 사이의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아마도 집에 도착해 찬물에 얼굴을 씻을 때까지도 그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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