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얼떨결에 친구 이상으로

이가미 2022. 8. 21. 01:36

 그러니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미노루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우습게도 그것이었다. 며칠 전에 막 연인이 된 소꿉친구에게 반쯤 덮쳐진 채로 하기엔 지나치게 태평한 고민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미노루의 뇌는 이를 위기 상황이라 판단했고, 그 원인을 파악하기로 멋대로 결심해 버린 것이다. 당장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해도 모자라건만, 원인이나 파악하고 앉았다니. 평소의 미노루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합리적인 생각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연애라는 것은 사람을 그토록 여유 없이 쩔쩔매게 하는 데가 있었다.

 어쨌거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오늘은 아마도 쇼우네이가 처음으로 미노루의 집에 놀러 온 날이었을 거다. 그래, 처음인 게 문제였다. 연인의 집에 처음 놀러 간 십 대 남학생이 으레 그렇듯 쇼우네이는 평소보다 들떠 안절부절못하며 시종일관 부산스레 움직였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괜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쇼우네이에게 그러지 말고 침대로 올라오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처음이라 들뜬 건 쇼우네이뿐만이 아니었다. 미노루도 연인을 집에 초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불과 며칠 전에 쇼우네이와 눈물의 고백을 한 이후 조금 더 마음을 표현하자고 결심한 참이었다. 그 결과 미노루는 평소라면 절대로 선뜻 말하지 않았을 것, 다시 말해 침대에 올라올 것을 쇼우네이에게 쉽게도 제안해 버린 것이다. 그 말에 더 당황해서 어버버 침대에 올라오던 쇼우네이는 미노루의 옆에 앉으려다 헛디뎌 미노루를 덮친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서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거다.

 그 때 미노루가 쇼우네이를 마주 안듯 감싸안은 건 순전히 충동이 이끈 행동이었다. 오갈 데를 찾지 못한 손을 꼼지락대고만 있다가 별 생각 없이 허리에 손을 둘렀을 뿐이다. 이윽고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에 스스로도 놀라 어쩔 줄 몰랐다. 당연히 쇼우네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보다 미노루 본인이 두 배는 놀랐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금세 표정을 갈무리한 쇼우네이가 픽 웃으며 물었다. 미노루가 여전히 갈팡질팡할 때였다.

 

“친구끼린 이런 거 안 한다며?”

 

 이럴 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미노루도 사회 생활은 꽤 해 봤지만 연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에 속한 관계였다. 여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정답을 추론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중 얼마 전에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이제 친구로는 못 돌아가. 어쩐지 그 말을 다시 들려 줘야 할 것 같았다. 마음을 확실히 하지 않아서 쇼우네이를 울게 만들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쇼우네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친구 아니니까.”

 

 그 결과 미노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일전에 했던 말의 반복 같으면서도 뜯어보면 다소 파격적이었다. 친구가 아니니까 이 정도의 신체 접촉까지는 허용한다는 말을 연애 이 주차에 쉽게도 내뱉어 버린 것이다. 뒤늦게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몸을 맞대고 누운 둘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맞닿은 부분은 이미 뜨뜻하다못해 땀이 배어들었다. 나 잠시만 화장실 다녀올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분위기를 견디다못해 한 마디 내뱉은 미노루가 쇼우네이를 밀쳐내듯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밖으로 도망치듯 나간 미노루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이나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때 이후 미노루가 이 때처럼 대담하게 군 날은 몇 달간 다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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