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여름날의 하굣길

이가미 2022. 8. 21. 01:35

 여름이 돌아와도 하굣길은 늘상 시끌벅적하다.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에 기세가 죽을 법도 하건만. 수업 시간마다 덥다며 축 늘어져 있던 학생들도 하교 시간만 되면 거짓말처럼 쌩쌩해진다. 특히 방학이 가까운 이 즈음에는 발걸음들이 더욱 가볍다. 집이 가까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마을이 떠나갈 듯 웃어댄다. 기분 좋은 날 -예컨대 용돈을 받은 다음날- 에는 한 손에 아이스 바나 주스 따위를 들고 걷기도 한다.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에서는 한 점의 걱정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모두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하교하는 것은 아니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멍한 얼굴로 터벅터벅 걷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시라유키 미노루는 대체로 후자 쪽이었다. 하굣길에 만난 친구가 이름을 부르거나 친근하게 어깨에 팔을 둘러 온다면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금세 무표정해지기 일쑤였다. 집에 돌아간대도 다시 채비를 해 일을 해야 하니 하교가 그리 즐거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스 바나 주스 등 하굣길 짝꿍 같은 간식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 웃을 일이 더더욱 없었다.

 그런 그의 하굣길이 달라진 것은 팔 월 초 즈음부터였다. 그 무렵 부쩍 사이가 좋아진 아카츠키 쇼우네이와 함께 하교하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었다. 쇼우네이는 늘상 미노루의 옆에서 재잘거리며 말을 해댔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했다. 친구를 놀린 이야기, 수업 시간 이야기, 그 날 먹은 점심 메뉴 등등……. 때로는 미노루를 놀리거나 가볍게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옆에서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것이 퍽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도 미노루 또한 쇼우네이가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주 좋아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쇼우네이와 방향이 갈라지는 갈림길이 가까워 올수록 걸음이 느려질 만큼이나 그랬다.

 어느 날은 쇼우네이가 함께 슈퍼에 들르자며 유난을 떨었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쇼우네이는 아이스 바 두 개를 사더니 하나를 미노루에게로 내밀었다. 미노루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아이스 바를 내미는 것이 장난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리송하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오늘 자판기에서 좋은 거 나와서 특별히 사 주는 거다? 라며 키득이는 꼴이 제법 얄미워 장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미노루는 그 날따라 자판기가 돈을 세 번이나 먹어 한바탕 했었기 때문이다.

 아이스 바 포장지를 까지 않고 들고 있으니 뭐 하냐는 쇼우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안 먹냐? 다 녹잖냐. 그리 말한 쇼우네이는 미노루의 손에서 아이스 바를 홱 가져가더니 포장 비닐을 까 알맹이를 미노루에게 건넸다. 솔직히 말하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이스 바에서는 인위적인 단맛이 난다. 무더운 햇빛에 녹아내리는 아이스 바를 핥으면 순간은 시원하지만 끈적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감싸 결국 더 찝찝하기만 하다. 게다가 아이스 바는 달콤한 부분이 더 먼저 녹아 버린다. 녹아내릴세라 몇 번 빨아먹을 때면 처음에는 진한 단맛이 기분 나쁘고, 나중에는 달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밍밍한 얼음만 남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이스 바가 녹아 손에 묻는 것은 사양이었다. 금세 흘러내리기 시작한 아이스 바를 하는 수 없이 입 안에 넣었다. 달고 끈적한 것이 영 찝찝했다. 사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맛있는 척 먹고 있는데, 옆에서 쇼우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맛있냐? 네가 더워하는 것 같아서 사 준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자판기랑 씨름하는 꼴을 보니 불쌍하기도 하고…….”

 

 쇼우네이의 말에 놀란 미노루가 순간 고개를 돌려 쇼우네이를 바라보았고, 동시에 쇼우네이는 고개를 휙 돌려 미노루의 시선을 피했다. 그 반응을 보니 너스레는 아닌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스 바를 사 준 쇼우네이의 행위는 미노루에게 불필요했다. 애시당초 미노루는 아이스 바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돈도 미노루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속에 담긴 작은 호의 하나가 불필요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이다. 쇼우네이의 말을 듣고 나니 손에 들린 아이스 바가 마냥 골칫거리 같지만은 않았다. 그 아이스 바는 자신을 하루종일 눈여겨보고 살펴 준 쇼우네이의 마음이었다.

 미노루가 아이스 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가 조금 시려질 때쯤 서걱, 하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입안에 넣은 아이스 바는 여전히 달고 끈적이고 인위적인 맛이 났다. 그렇지만 그것이 마냥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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