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창문을 열어 두길 잘 했다. 창문 틈으로 쇼우네이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열고 자면 찾아오겠다던 약속이 완전한 공수표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쇼우네이로부터 그 말을 들은 날부터 미노루는 매일 밤 창문을 열어 둔 채 잠을 청했다. 아마도 창문을 열고 잔 지 한 달이 넘었을 거다. 여름이 가고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질 때까지도 쇼우네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슬슬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이뤄지지 않는 약속에 지쳐 창문을 닫고 잘까 생각하던 차였다. 마지막으로 하루만 창문을 열어 두고 자자고 다짐했는데, 이제 와서 약속이 지켜진 것이 꿈만 같았다.
쇼우네이는 새벽 세 시, 모두가 잠든 이슥한 밤에 미노루의 방으로 찾아왔다. 창문 바로 앞에 있는 벚나무를 타고 이 층에 있는 미노루의 방까지 다다른 모양이었다. 옆에는 스노를 꼭 닮은 흰 고양이도 함께였다. 쇼우네이가 유려한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살살 쓰다듬자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쇼우네이에게 머리를 비벼댔다. 미노루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이상하지만 스노는 미노루를 꽤나 닮아서, 스노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이 마치 자신을 향한 마음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늘 장난기가 감돌던 눈길도 그날따라 부드러운 온기를 띠고 있었다. 미노루를 향한 마음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로 쇼우네이가 입을 열었다.
“창문 열어 뒀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냐?”
다소 장난기 섞인 말이었지만 짖궂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부드러운 눈길 탓이었다. 어쩌면 내용과는 달리 상냥한 목소리 탓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렇다면 어떡할 거야?”
평소대로라면 무슨 소리냐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려 줬을 터였건만. 쇼우네이의 따스한 목소리는 마치 ‘내가 널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따뜻한 울림이 미노루의 마음을 녹여 그 또한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 놓게 했다.
“그럴 것 같아서 찾아왔잖냐.”
뒤이은 쇼우네이의 말은 여전히 짖궂고, 으스대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듣기 좋았다. 미노루의 입에서 간질간질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게 좋냐? 라며 또 한 번 으스대는 쇼우네이에게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같다.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려지자 야옹 야옹 울기 시작한 고양이를 몇 번 토닥여 준 기억도 난다. 어렴풋하게 그런 기억들이 난다.
“아…….”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다섯 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미노루가 이내 협탁에 놓인 탁상 시계를 짜증스럽게 집어 알람을 껐다. 쇼우네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꿈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쇼우네이가 새벽 세 시에, 그것도 능숙하게 나무를 타고 찾아온 것이 이상하다 했다.
그래도 쇼우네이가 약속을 아주 안 지킨 것은 아니었다. 애시당초 미노루는 꿈이라는 것을 꾼 횟수가 손에 꼽는다. 어젯밤의 꿈도 몇 달만에 꾸는 꿈이었을 거다. 그런 자신의 꿈 속을 비집어 찾아왔으니 꽤나 성실히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져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오늘은 학교에 가서 쇼우네이에게 꿈 이야기를 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그런 미노루의 계획은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가자마자 없던 일이 되었다. 이상하게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은 붕 뜬 것처럼 말을 듣지 않고 휘청였다. 코에서는 콧물이 쏟아졌다. 뭐야, 하고 짧은 푸념을 하려는데, 목도 영 꺼끌꺼끌한 게 평소 같지 않았다. 그때서야 미노루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평소보다 뜨거운 것이 열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어디 있나.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오늘처럼 등교하고 싶었던 날이 없었는데, 온 세상이 자신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미노루는, 조금 전보다 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아무래도 날이 다시 풀릴 때까지는 창문을 닫고 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