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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검은빛을 띤다

아카시라(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시곗바늘소리 / 후회 / 정장을 차려입고 오래된 옷에는 삶이 덧대어져 있다. 시간이 흘러 닳고 해어진 부분마다 감정이라 불리는 천이 기억의 실로 수놓아진다. 학창 시절 내내 입은 교복에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스며 있는 것처럼 옷마다 저마다의 시간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검은 정장에 얽힌 건 특별하다. 그 안에 깊이 배어든 건 장례식장의 기억이다. 장례식장 안을 소용돌이치듯 메우는 감정들은 옷 속에도 흠뻑 배어들었다. 슬픔, 울분, 절망, 미련, 회한……. 그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 것은 결국 후회다. 후회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의 총체다. 살아생전 못다 한 말, 상처를 주었던 일, 미처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에 대한 후회가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여러 갈래의 감정..

기타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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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다급한 주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른 대로 말하자면 아무도 없다고 단정짓기에는 어렵다. 나 또한 그 '아무'에 포함시켜 준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급하게나마 인사한 대상은 나라는 셈이 된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야옹- 하고 한 번 길게 울었다. 그것이야말로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있으면 있는 거지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며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집에서는 내가 예외로 취급받는 일이 잦다. 지금 밥 먹을 사람 있냐는 물음에 아무리 야옹- 하고 울어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아무도 없네.' 따위의 것이었으니 내가 내 위치에 대해 이토록 조심스럽게 생각한대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런고 하..

기타 2022.01.15

"……." 시라유키 미노루가 입을 열지 않은 지 약 삼십 분이 지났다. 원래부터 그다지 수다쟁이는 아니었던 그가 삼십 분간 침묵을 지키는 것은 애시당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처럼 그의 연인인 아카츠키 쇼우네이와 함께하는 여행 중, 그것도 구태여 찾아 걸음한 유명 관광 명소인 빌딩의 꼭대기에서 삼십 분간 입을 열지 않는 것은 모로 보나 범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그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침묵을 지키는 것 이상의 감정적인 신호를 눈치챌 수 있었다. 평소보다도 치켜올라간 눈매와 굳게 앙다문 입술, 날카롭게 툭툭 끊어지는 몸짓이 그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해 주었다. 한 마디로 그는 완전히 토라진 것이다. 본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기..

기타 202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