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사랑의 온도 - 2

이가미 2023. 5. 1. 22:39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휴일 오후였다. 창문틈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눈이 부셨다. 느지막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 쇼우네이가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걸어나왔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오자마자 거실 소파가 보였다. 소파 위에는 미노루가 앉아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도 따스한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얼굴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잘 잤어? 라며 익숙한 인사를 건네는 대신,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마침내 미노루의 한 발짝 뒤로 다가갔을 때, 쇼우네이가 두 팔을 넓게 벌려 미노루를 와락 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미노루가 어깨를 흠칫 떠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유치한 장난에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쇼우네이가 키들키들 웃었다.

"뭐야……. 놀랐잖아."

미노루가 한숨 섞인 타박이 한없이 부드러워 웃음이 났다. 미노루 또한 그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뒤로 젖혀 쇼우네이에게 기대 왔다. 말을 꺼내는 대신, 쇼우네이는 눈을 감은 채로 제 품에 안긴 따스한 몸과 어깨에 기댄 자그만 머리의 무게를 가만히 느꼈다. 작고 기분 좋은 온기가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미노루와 사귄 지는 십삼 년, 함께 살기 시작한 지는 십 년이 지났다. 불꽃처럼 열렬히 타오르는 사랑에는 유효 기간이 있기 마련이었다. 미노루를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렇다고 해서 질리거나 사랑이 식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설렘이나 자극이 없어도 좋았다. 제 삶의 한 부분에 들어와서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는 미노루의 확실한 존재감이 연애 초기의 설렘과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같은 자리를 지키며 저를 기다리는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함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첫사랑의 짜릿함이 사라져가는 빈자리를 안정과 신뢰로 채워가는 연애가 이토록 행복할 줄이야. 미노루를 만나지 않았다면 상상하지조차 못했을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의 연애가 마냥 일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둘의 시간은 수많은 처음을 함께한 추억으로 가득차 있었다. 익숙한 것만을 찾던 미노루에게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러운 쇼우네이는 그야말로 성난 파도와도 같은 존재였다. 함께하면 피곤해질 것이 뻔했다. 그러나 미노루는 그를 피하는 대신 사나운 물결에 몸을 내맡겼다. 쇼우네이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허락된 수많은 처음을 쇼우네이에게 내어 주고 싶었다. 미노루의 결단에 응하기라도 하듯 쇼우네이도 자신의 처음을 수없이 발굴해 미노루와 함께했다. 두 명의 초보가 손을 잡고 걸으며 헤매기도 많이 헤맸지만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함께하는 순간순간은 새롭고 자극적이었으며 찰나의 순간들을 쌓아 만들어진 애정은 견고했다. 마치 지층처럼, 그 총체는 단단하면서도 단면을 들여다보면 오색찬연한 추억들이 층층이 덧씌워져 있었다.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사랑의 크기가 놀랍기만 했다. 함께하는 것이 편안하면서도 지겹지 않았다.
속에서부터 일렁이는 사랑스러움을 이기지 못한 쇼우네이가 미노루의 목덜미에 쪽, 입을 맞췄다. 기분 좋게 까르르 웃은 미노루가 손을 뒤로 뻗어 쇼우네이의 머리칼을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잘 잤어?" 다정함이 뚝뚝 묻어나는 미노루의 목소리가 쇼우네이의 귓가에 닿았다. 따스한 시선이 쇼우네이를 향하고 있었다.
잘 잤다고 말했다. 같이 자고 같은 곳에서 눈을 뜨는 것이 행복해서, 깨어난 뒤에 이어질 하루가 소중해서. 그리고 이처럼 아름다운 날들이 내일도, 모레도 이어진다는 확신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안정감을 줘서. 그래서 잘 잤어. 구태여 길게 이야기하는 대신 잘 잤다고만 했지만 그 간단한 말마디에 수 개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었다. 너는? 이라고 반문하자 미노루 또한 잘 잤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또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깊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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