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은총을 받은 아이. 고대의 아카츠키 일족에는 그리 불리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외모와 체력의 최전성기라 불리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노화가 멈춘 이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죽음마저도 그들만은 슬그머니 비껴갔다. 수많은 이들이 나이를 먹어 이 땅을 스쳐지나는 와중에도 언제까지고 청춘의 정점을 구가하는 그들은 자연히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일족 전부가 그들을 신의 아이라며 떠받들었다.
신의 아이는 아무런 전조 없이 태어났다. 발생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어느 부부에게서 태어날지조차 짐작이 불가능했다. 발생 원인과 그들의 말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가운데 사람들이 알아낸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신의 아이가 수백 년에 한 명 꼴로 생겨난다는 것과 직전의 신의 아이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수 대에 걸쳐 이루어져야 다음 신의 아이가 생겨난다는 것. 신의 아이의 존재와 이 두 가지 사실은 세대가 교체될 적마다 선대의 입을 타고 전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신의 선물을 받은 그 아이들에게 신의 총애가 머무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때문에 신의 아이들은 저들이 신의 아이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제사장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십 세를 훌쩍 넘기고서도 노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에게 자동으로 기존 신의 아이가 가진 제사장 지위가 승계되는 형태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제사장이 원하는 것에 늘 귀기울였다. 매일 먹을 세 끼 식사와 살 곳을 준비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사들여 공물로 바쳤다. 그토록 귀히 대우받는 그들에게는 신과 소통하고 신의 음성을 전달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역할이 맡겨지곤 하였는데, 그 성향이 제각기 다른 탓에 제게 주어진 소임에 임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이었다. 대부분은 제가 선택된 것을 영광으로 여겨 주어진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나 어떤 이는 주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음에도 다른 구성원의 외압에 못 이겨 마지못해 제 처지를 받아들였으며 또 어떤 이는 제 지위를 이용해 호사를 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이들이었으나 그들에게는 단 한 가지 확실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미래를 점치거나 신과 소통하는 능력 따위 없었다.
특이한 점은 신의 아이 본인들조차 제게 신과 소통할 능력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제아무리 영특하던 아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무능할지라도 마을 전체가 그들 스스로를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 믿게끔 만들었다. 그들의 업무는 간단했다. 그저 온 일족이 저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일 년의 첫 번째 날에 하늘을 한 번 보고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말하면 끝이었다. 신의 아이가 일 년의 첫 번째 날에 하늘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곧 신의 음성이라는 일족 전원의 믿음 하에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신의 아이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기에 예언은 적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마다 그들의 지위가 위태로워졌어야 할 터였건만, 그와 같은 일은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카츠키 일족에게 있어 신의 아이의 예언이 적중하지 않은 것은 예언한 시점과 결과가 나타난 시점 사이 누군가가 신을 노하게 해 천기를 흐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예언이 틀릴 적마다 그들은 신의 아이를 문책하는 대신 예언의 성취를 방해한 범인을 색출해 잔혹하게 처형하곤 했다. 신을 노하게 한 이에게 형벌을 가해 신의 진노를 가라앉힌다는 이유였다. 색출의 방법이라 한들 마을 주민들의 이름이 적힌 막대기들 중 하나를 뽑는 것일 뿐이었다. 신의 진노가 범인에게 향해 알맞은 막대가 뽑히리라 믿었던 탓이다. 때문에 신의 아이의 예언이 적중하지 않을 때마다 마을에는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누군가는 범인으로 지목되어 고통스럽게 목숨을 잃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제 말 한 마디에 사람의 목숨마저 좌우되는 일이 몇 해고 반복됨에 따라 신의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며 제 계시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게 되었다. 자신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을 사람 중 누군가 천기를 건드려 제 예언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방해했을 뿐. 마을의 누구도 이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의 아이 본인조차도. 마을 전체가 광적으로 신의 아이를 떠받들었다.
그들이 이처럼 지독히 세뇌된 데에도 이유는 있었다. 아카츠키 일족의 본거지는 본디 첩첩산중 한가운데의 척박한 땅이었다. 그 황무지를 열 명이 채 안 되는 구성원이 일구어 시작된 아카츠키 일족은 모두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번성해 현재와 같이 작지 않은 마을을 이루었다. 분명 그들의 번영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기적인 동시에 우연의 산물이었다. 저들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우연의 결과는 당시 신관이었던 첫 신의 아이의 공로로 돌아갔다. 그 옛적에도 사람들은 신의 아이가 가진 기나긴 청춘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그들에게 신의 아이의 출현은 신께서 허락하신 유일한 선물이었다. 신과의 소통이 가능한 존재. 그리고 그런 존재를 신으로부터 내려받은, 신의 선택을 받은 일족.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도 수백 년마다 한 명씩 꾸준히 등장한 신의 아이는 일족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런 일족이 신의 아이에 대한 두 번째 사실, 다음 대의 신의 아이는 인간과 기존 신의 아이의 수백 년에 걸친 상호작용 끝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그들에게 신의 아이란 신께서 주신 선물이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과도 같았다. 발생 조건 따위 알 리도, 알 필요도 없었다. 수백여 년간 한 신의 아이에게 의존하다 다음 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제사장을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이전 신의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살아가다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가. 이는 마을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신의 아이의 말로도 알 수 없었다. 신의 아이의 최후는 자연히 베일에 싸인 것이 아니었다. 일족이 방관했을 뿐. 퇴위 이후 신의 아이의 행방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마지막 신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열 번째 신의 아이, 아카츠키 쇼우네이에게는 이전 신의 아이들에 비해 두각을 드러내는 면모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눈에 띄게 강한 호기심의 소유자라는 사실이었다. 호기심만은 선대들의 추종을 불허하던 그는 처음으로 그 누구도, 심지어 신의 아이 본인들조차도 관심을 두지 않던 신의 아이의 최후에 주목했다. 본디 자신의 말로를 떠올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신의 아이 중 누구도 이를 생각하려 들지 않은 탓에 이를 고민한 것은 쇼우네이가 유일했다. 앉은자리에서 한두 마디 말만을 하고도 떠받들어지던 편안함에 안주하던 신의 아이들은 장래를 고민할 힘을 잃어버렸다. 쇼우네이는 여전히 제가 신의 아이임이 밝혀지던 첫 순간을 잊지 못한다. 제게 제사장의 지위가 승계될 때 보았던, 제사장직에서 물러나던 선대의 얼굴. 그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잠이나 더 자고 싶다는 얼굴이었던 것도, 조금은 배가 고프다는 얼굴이었던 것도 같았다. 수백 년간 떠받들어지며 생리적인 욕구와 말초적인 쾌락 이상의 것을 좇지 않게 된 흐리멍덩하고 탁한 표정을 보는 순간 쇼우네이의 등줄기에 기묘한 오싹함이 일었다.
그 후 제사장으로 지내며 단 한순간도 편안해 본 적이 없었다. 당장 제게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차려 주고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주며 밤마다 동침할 여자를 붙여 주는 일족의 구성원들이 다음 신의 아이가 나오자마자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는 또한 자신에게 신과 소통하는 능력이 없음을 임기 끝까지 알고 있던 유일한 제사장이기도 했다. 아무런 근거 없는 예언에 사람의 목숨이 좌우되는 것이 두려워 늘 두루뭉술한 계시만을 전해 왔건만, 그마저 예측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을 사람들이 저를 위해 최고급으로 마련한 제사장의 자리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열 번째 신의 아이, 아카츠키 쇼우네이는 제 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면서도 남몰래 제 위치에 회의를 가지던 첫 제사장이었다.
그런 그가 일족에게 뚜렷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은 제사장 지위에 있은 지 칠 년이 지난 어느 시점이었다. 그 해 쇼우네이의 예언은 적중하지 않았다. 예언이 적중하지 않을 때마다 지도자 가문의 장이 구성원 전원의 이름을 새겨넣은 나무막대기 중 하나를 무작위로 뽑았다. 신을 노하게 한 범인을 색출할 때마다 행해지던 유구한 관습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제비를 뽑은 즉시 막대기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하는 것이 관례였건만. 그날따라 지도자가 쇼우네이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추궁해도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고개를 몇 번이고 조아리기만 하던 그로부터 이렇다 할 답은 들을 수는 없었다. 아직 권력에 찌들지 않은 쇼우네이는 그와 같은 모종의 거역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 이상 추궁하거나 지도자를 벌할 수 있었음에도 나름대로의 자비를 베풀어 넘어갔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아카츠키 쇼우네이의 아버지가 사라졌다. 다른 이에게 물어도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갔다는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 해에 거행되었어야 할 처형식이 아무 소식 없이 잠잠했다는 것이다. 신의 아이가 틀렸다. 처형은 없었다. 이 두 가지 사실에 끔찍한 위화감을 느낀 쇼우네이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장에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날 밤, 아카츠키 쇼우네이는 칼을 한 자루 챙겨 마을 밖으로 달아났다. 안일하게 꾸벅꾸벅 졸던 보초병들은 기습적인 탈출에 손쓸 새 없이 그를 놓치고 말았다. 챙겨 온 칼을 제대로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탈출은 어이없을 정도로 쉬웠다. 그런데도 탈출을 감행한 신의 아이가 없다는 것은 그들 중 누구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그 사실에 다시 한 번 섬찟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일족 내에서 자행되어 온 일은 수많은 사람을 억울하게 죽여나간 동시에 신의 아이를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었다. 마을 전체가 제 의지 없는 인형과도 같은 살인귀를 키워냈다. 이 사실을 마주하자 그 추악함에 치가 떨렸다. 그저 마을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세지 않았다. 달리다 힘이 빠지면 걷고, 호흡이 진정되면 다시 달리기를 한참이나 반복했다. 해가 몇 번쯤 뜨고 졌던 것도 같았다. 얼마나 더 도망쳤을까, 그는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도달했다. 그만큼이나 떨어졌으니 일족 중 누구도 찾아올 수 없겠지.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긴장이 풀린 그가 쉴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 순간부터 오로지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목적의식과 저를 쫓던 보초병에게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움직이고 있던 탓이었다. 긴장과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주저앉으니 비로소 다른 감각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를 덮쳐온 것은 강렬한 피로였다. 몇 날 며칠을 혹사시킨 발이 한껏 쌓인 통증과 피로를 온몸으로 올려보냈다. 수풀을 헤치며 움직이던 팔다리 또한 근육이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간 듯 욱신거렸다. 다시 일어서 보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지독한 갈증과 굶주림이었다. 생각해 보니 마을을 떠난 이후 뱃속에 무언가를 넣은 기억이 없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무언가를 먹지 않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족 구성원들의 말마따나 신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음이 밝혀진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고생스러운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상시 하는 것이라고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강렬한 회의를 잠시나마 억누를 단발적인 쾌락을 찾는 데 몰두하는 것뿐이었음에도 그는 결코 밥을 굶거나 길에서 자는 일이 없었다. 제아무리 게으르고 방탕한 신의 아이라 한들 세 끼 식사와 최고급의 침실, 그 외에도 원하는 모든 것이 늘 제공되었던 탓이다. 마을을 떠나 온 대가는 그간 겪어 본 적 없는 처절한 고생이었다. 이를 통감하면서도 후회는 들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운 좋게 근처에 매달려 있던 나무 열매를 따 입에 넣었다. 고작 몇 알을 입에 넣었다고 뱃속이 요동치며 오랜만에 들어온 음식물을 반겼다. 이토록 본능에 충실한 몸이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여느 누구와도 같은 약점을 지닌 완벽한 인간이면서도 그 연약한 몸뚱아리는 결코 죽지만은 않았다. 체감 상 며칠 간은 물을 못 마셨으니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것이 그 증거였다. 고통 속에서 죽지만은 않은 채 나무 열매를 먹어 허기와 갈증을 겨우 달랜 그는 곧이어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지기 시작한 저녁쯤이었다. 몇 시간만 잔 건지 잠에 빠져 하루를 훌쩍 건너뛴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휴식을 취하고 배도 고통스럽지 않을 만큼 채우고서야 비로소 몸이 추위와 어둠을 느끼기 시작했다. 산에서 보내는 밤은 한겨울이 아니었음에도 무척이나 쌀쌀하고 길었다.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비척비척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그는 제법 빠르게 동굴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제아무리 길고 긴 생을 가졌다 한들 미지의 구역을 탐사할 때 겁이 나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안을 확인하며 그는 동굴로 한 발자국씩 걸어들어갔다.
몇 걸음쯤 걸었을 때 그의 발에 무언가 찰그랑 소리를 내며 채였다. 그 정체를 확인한 쇼우네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의 발치에 있던 것은 다름아닌 금속제 장신구였다. 동굴과 금속 장신구. 모로 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함께 있을 가능성은 한 가지뿐이었다. 이곳에 한때 사람이 머물렀거나 머무는 중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걸음을 재촉해 동굴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고 동굴 속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마침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 이르러서야 평평한 땅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에는 한 사람이 눈을 감고 웅크려 있었다. 저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이나 야위었고 행색이 추레한 젊은 남자. 얕은 잠이라도 자던 것일까. 쇼우네이의 기척에 젊은이가 살며시 눈을 뜨더니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마구 비벼댔다. 쇼우네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빠른 속도로 쇼우네이에게 기다시피 다가왔다. 뼈만이 앙상한 몸이 어쩌면 그리도 빠른지. 그 기세에 밀린 쇼우네이가 뒤로 조금 물러서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는 쇼우네이의 바짓자락을 대뜸 잡아챘다. 그가 말라붙은 입술을 열었다.
"너도 신의 아이야?"
예상치 못한 발언에 쇼우네이의 눈이 일순간 크게 뜨였다. 제게서 눈을 떼지 않는 상대의 움푹 파인 눈은 다 죽어가는 뼈다귀 같은 몸뚱이와 어울리지 않게도 형형하게 빛났다. 그 안에 깃든 감정이 환희 같기도, 간절함 같기도 했다. 기세에 눌려 입을 열지 못한 쇼우네이가 보일 듯 말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쇼우네이의 양 손을 잡아챘다. 뼈 위에 얇은 살가죽만을 한 겹 얹은 듯한 그 손은 거칠고 딱딱했으며 군데군데 생채기가 나 있었다. 한 조각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손의 감촉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저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마저도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이는 처음 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이 붙은 듯 가만히 선 쇼우네이에게 그가 다시 한 마디를 건넸다.
"잘 됐네. 우리 같이 여기서 살자. 둘이 있으면 살아가기에 조금 더 나을 거야"
"예? 저는……."
"어차피 너도 버림받은 신의 아이잖아."
남자의 제안이 부담스러운 듯 서서히 뒷걸음질치던 쇼우네이의 발이 그의 마지막 말에 우뚝 멈추었다. 그 말을 꺼낸 본인은 버림받은 신의 아이라는 것인지. 신의 아이는 다음 신의 아이가 나타나면 버림받아 제게 허락된 기나긴 세월을 홀로 보낸다. 그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신의 아이의 말로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막연히 그럴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으나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결이 다른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불결한 존재가 온몸을 기어가는 듯 온몸이 불쾌한 감각에 휩싸였고 속은 메슥거려 오기 시작했다. 아카츠키 일족, 신의 아이의 말로를 감춘 채 매년 같은 일족을 하나씩 죽여나가던 지도자 집안, 그리고 아마도 아무런 의심 없이 제게 주어진 특권을 누려 오기만 했을 눈앞의 젊은이까지. 모든 것이 역겨웠다. 울컥울컥 비어져나오는 토기를 애써 눌러 참던 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쇼우네이의 반응을 살피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마을의 지도자는 신의 아이를 지독히도 시기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저들과 달리 언제까지고 늙지 않는 신의 아이를 떠받드는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며 기피했다는 것. 그리고 지도자들은 신의 아이를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초월적 존재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해 마을 사람들이 저들을 향해 품을지 모를 불만을 잠재우고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신의 아이를 이용했다는 것. 그런 그들에게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신의 아이는 적어도 몇백 년간은 죽지 않으며 스스로를 해하고서야 겨우 삶을 끝낼 수 있다는 것까지. 무엇 하나 가혹하지 않은 사실이 없었다.
제게 날것 그대로의 사실을 들려 준 남자를 뒤로하고 동굴 밖으로 걸어나온 쇼우네이는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쫓기듯 달리던 때와 달리 나무 열매나 작은 동물들을 먹기도, 개울가에서 물을 마시거나 나무 밑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여전히 제사장직에 있던 시절보다 한참이나 못한 생활을 영위했지만 그 때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마을과 분리된 채 며칠을 더 걸으니 어리저이 흐리던 마음이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낮고 완만해진 산세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산을 오르고 또 올라 탁 트인 곳에 도달한 쇼우네이가 아래쪽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는 놀라운 광경을 포착했다. 집들이 못해도 수십 채는 되어 보이는 평야였다. 또 다른 마을이었다. 고립되어 있던 탓에 일족이 살던 곳이 아닌 다른 마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살던 곳 밖에도 사람들은 살았고 마을 또한 존재했다. 그 사실이 그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뛰게 했다. 고양감에 벅차오르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그가 마을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내려갔다. 부디 이 마을만은 그가 떠나 온 곳과 같지 않기를. 제게 길고 긴 젊음을 주었던 그 신에게 남몰래 빌며 쇼우네이는 한 걸음씩 마을에 가까워졌다.
마을에서의 생활은 그의 생각만큼 잘 풀리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텃세를 부리지도, 아카츠키 일족의 마을처럼 기묘한 관습을 가지지도 않았다. 드물게도 순박한 인심을 지닌 이들이 모인 마을이었다. 처음 몇 년간은 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아주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어그러졌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무를 하던 중 한 인부가 그에게 한 마디를 건넨 것이 전부였다. 자네는 늙지도 않는구만. 참 신기해.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한 그가 제 특수한 사정을 알아차렸을 리 없었을지언정 쇼우네이에게 그 말은 마을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언제까지고 마을에 붙어 늙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마을 주민들이 쇼우네이를 두려워할지도, 그가 떠나 온 마을에서처럼 그를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 모시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제 본거지에서와 비슷한 일이 자행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날 밤, 쇼우네이는 갈아입을 옷 한 벌과 약간의 식량만을 챙겨 살던 곳을 떠났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그를 붙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몇 년간 정을 붙였던 마을을 떠나려니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마을의 끄트머리에 선 채 제가 지내 온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가에 맺힌 눈물이 마을을 흐려 보이게 할 때쯤에야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지워지지 않는 한 줌의 미련만을 마을에 남긴 채 쇼우네이는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그 이후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산에서 연명하다 가끔 마을을 발견해 그 구성원들과 어울리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을을 떠나고. 비슷한 일이 수십 번쯤 반복되었다. 그 즈음의 그는 나이를 세는 일마저 포기했다. 달리 부여받은 능력 없이 연명만이 가능한 삶. 이것은 신의 은총 따위가 아닌 저주였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거쳐 갔자민 그는 언제고 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야 하는 그에게는 다른 이와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일도, 정을 통하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고독을 견디다못한 그는 몇 번이고 칼을 뽑아들기도, 잔에 독을 타거나 벼랑 끝에 서기도 했으나 제 스스로 몸을 해하기 직전의 순간 찾아오는, 온몸의 털이 아찔하게 곤두서는 느낌에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무섭다.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건지……."
늘상 깊이를 알 수 없는 한탄을 하면서도 이렇다 할 결단은 내리지 못했다. 그가 수십, 수백 번을 망설이는 사이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먼 곳을 이동할 때면 걷거나 말을 타던 그들은 어느새 자동차와 비행기 중 하나를 선택해 이동했고 먼 곳에 있는 이와도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었다. 신과의 소통이라는 있지도 않은 능력보다야 그 쪽이 훨씬 나아 보였다. 인간이 그토록 변하는 동안 저는 산 속에 갇혀 살듯 하다 가끔 마을에 나오고 제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들킬 때쯤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생활을 반복하기나 하다니. 생각할수록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갖은 고생을 하고 위기를 겪으면서도 끊어질 줄 모르던 생은 수천 년이 지나도 도무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진정 끝은 찾아오지 않는 건지. 영원이라는 말은 막연하기 그지없었으나 그것이 제 이야기라면 무게가 달랐다. 제게 허락된 시간이 영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몸이 바위에 짓눌리듯 무거워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밤을 지새웠다. 그는 어쩔 수 없는 겁쟁이였다. 당장 목숨을 끊을 준비도, 영원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은 겁쟁이. 만일 제게 허락된 선택지가 둘뿐이라면.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한참의 고민 끝에 결심을 굳힌 쇼우네이가 깊은 산을 오르고 올라 절벽 앞에 섰다. 한밤중이었다. 어느덧 벼랑 끝에 다다른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을 거세게 휘감는 바람이 제가 땅에서 발을 떼는 순간 저를 감쌀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그대로 뛰어내리면 바람에게 안긴 채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단 한 발만 딛으면 되는 일이었건만, 한 조각 미련이 미약한 의지를 가진 그의 발을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세상을 보고 가자. 강렬한 내면의 소리에 붙들린 쇼우네이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려던 그의 눈이 번쩍 크게 뜨였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저 멀리 산 아래에서 반짝이는 빛무리였다. 작은 빛둘이 점점이 모인 모습이 마치 하늘의 별을 따서 땅에 심어 둔 듯했다. 점점이 반짝이는 빛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제 자리를 지키기도 하며 그 눈부신 활력을, 저들이 살아 있음을 뽐냈다. 쇼우네이의 눈에 오랜만에 생기가 감돌았다. 한 번만 더. 정말 한 번만 더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번에도 재미없으면 미련 없이 죽는 거야. 새로이 결심한 쇼우네이는 한참이나 절벽 아래의 야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물게도 가슴이 뛰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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