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아카시라 짧은 그리움 연작 2

이가미 2021. 11. 15. 00:03

이화우(@ehdska3c2) 님 커미션

 
"나 없는 동안 잘 있었어?"
"며칠이나 떨어져 있었다고 그런 걸 묻냐."
"나 없다고 운 건 아니지?"
"웬 헛소리야."
 
 장난스럽게 묻는 족족 냉랭한 대답을 뱉어내는 것과는 달리 미노루의 표정은 기분 좋게 누그러졌다. 이틀을 기다린 끝에 제 연인인 아카츠키 쇼우네이를 다시 만났으니 그럴 법도 했다. 조금 피곤한 것을 빼고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일요일 밤, 마지막 배를 타고 느지막이 돌아온 쇼우네이에게 일단 쉬고 다음 날 아침에 만나자고 말한 뒤 정작 미노루 본인은 잠을 설친 탓이다. 얼른 자야 다음 날 아침도 빠르게 올 텐데. 다시 쇼우네이를 보기까지의 몇 시간을 기다리기가 힘이 든 한편으로는 잠에 빠져드는 일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식을 줄 모르고 기대감과 함께 부풀어오르는 마음 탓에 몇 시간 동안 침대에서 구르다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고작 이틀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다고 기대감에 잠을 설치다니, 중증이었다.
 그런 미노루가 상당히 들떠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아침 업무를 마치고 쇼우네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이 속도를 자꾸만 더해가려는 것을 참느라 얼마나 힘겨웠는지 모른다. 기껏 참던 것이 무색하게도, 예상치 못하게 제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던 쇼우네이를 발견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우다다 달려갈 뻔했다. 가볍게 통통 튀는 걸음걸이를 애써 진정시키려다 보니 걷는 몸짓이 제법 우스워졌다. 이를 알아챈 것일까, 미노루를 발견한 쇼우네이가 멀리서부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짖궂은 질문 공세를 해 온 것이다. 오랜만에 -비록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만난 연인에게 다정하지는 못할망정 놀려대기나 하다니. 기가 막히면서도 웃음기가 슬며시 새어나와 얼굴이 자꾸 일그러졌다.
 장난기 어린 말을 꺼내던 것도 잠시, 몇 걸음쯤 미노루를 따라나온 쇼우네이가 미노루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맞잡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에 사흘 전의 퇴근길이 떠올라 버린다. 집 앞을 향해 천천히 걷던 미노루가 가로등 앞에서 슬그머니 멈춰섰다. 금요일 밤에 쇼우네이를 홀로 돌려보냈던 바로 그 가로등이었다. 그 때, 쇼우네이는 짧은 만큼 가볍고, 가벼운 만큼 아쉬웠던 입맞춤만을 남긴 채 돌아섰었다. 그 때의 기억이 아득하면서도 입술에 닿았던 감촉만큼은 선명해 주말 내내 괜히 입술을 매만졌던 기억이 난다.
 그 짧은 기억만을 남긴 채 저를 두고 떠났던 쇼우네이를 다시금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제게로 시선을 옮긴 쇼우네이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밝아오는 새벽 여명에 꺼지기 직전인 가로등이 밝게 산화하며 둘을 비춘다. 마치 어둑한 무대 위에 핀 조명을 내리쬐듯 둘만이 선명하다. 어둠에 흐리게 이지러지던 얼굴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받은 얼굴은 평소보다 무척이나 따뜻한 빛을 띠었다. 미노루가 마주 잡은 손을 살며시 당겨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쇼우네이를 이끌었다. 잠시나마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던 빛이 떠나자 금세 어둑한 새벽 하늘이 둘을 휘감는다. 일순간 찾아온 어둠에 시야가 흐려진 그 때였다.
 미노루의 입술이 쇼우네이의 입술에 닿았다 순식간에 떨어졌다. 일 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입맞춤이었다. 짧게나마 남겨진 여운은 바람결에 금세 흩어졌다. 순간 무엇이 지나갔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던 쇼우네이가 이내 짖궂게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제 앞에서 고개를 홱 돌려버린 미노루를 집요하게 눈으로 쫓으며 톡 튀어나온 송곳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던 쇼우네이가 가볍게 톡 던지듯 물었다.
 
"더 없어?"
"……."
"피하지만 말고 더 해 주라."
"……나중에."
 
 대충 얼버무린 미노루가 쇼우네이의 품 안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다소 갑작스러운 공세에 쇼우네이의 입가에서 픽 하고 작은 웃음이 새어나갔다. 품에 안겨 버리면 더 이상 뭘 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몇 달쯤 만났다고 벌써 저에 대해 파악해 버린 건지, 제 짖궂은 추궁을 피할 최적의 장소에 고개를 묻고 숨어 버리는 미노루의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터지려 했다. 이를 알 리 없는 미노루는 진정될 생각을 않고 점차 붉어지기만 하는 얼굴을 쇼우네이의 코트 안에 쏙 감춘 채 꼼짝할 생각을 않았다. 바람을 한껏 머금은 쇼우네이의 코트에서는 차가운 겨울의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콧속까지 시려오는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열이 올랐다. 보고 싶었어.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에마저 미약한 열기가 감돌았다. 가만히 듣던 쇼우네이는 제 가슴팍을 간질이며 웅얼거리는 미노루의 흰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겨울 공기를 머금어 차가우면서도 제 손이 닿는 곳마다 폭신하게 내려앉았다. 소복이 쌓인 눈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머리칼을 쓰다듬다 장난스럽게 털기도 하던 쇼우네이가 입을 열었다.
 
"겨우 이틀 나가 있었는데도?"
"……응."
 
 말끝을 흐린 미노루는 양 손에 꼭 쥔 쇼우네이의 코트자락을 살며시 놓고 그 허리에 양 팔을 둘렀다. 팔 안에 꽉 차게 들어오는 탄탄한 허리가 제 앞에 선 쇼우네이의 존재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어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진다. 겨우 이틀 간의 공백이었음에도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난 그리움을 한껏 담아 쇼우네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쇼우네이가 조심스레 미노루의 몸을 감싸 안았다. 보드랍고 차가운 털옷이 쇼우네이의 온기를 머금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둘은 몇 분간이나 서로를 부둥켜안고 제 품에 있는 상대의 존재를 느꼈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의 하늘을 따스하게 감싸는 가로등의 빛살에서는 조금 비껴나 있었다. 빛이 그들을 비추지 않는대도 상관없었다. 저들을 비추는 조명 따위가 없어도 그들은 둘만의 따뜻한 세계에서만큼은 어엿한 주인공이었다. 마지막 불빛을 태우던 가로등은 점차 떠오르는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꺼져가며 미약한 잔열만을 남겼다. 둘은 여전히 부둥켜안은 채였다. 조명이 꺼져도 둘의 사랑은 막을 내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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