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90분 전력

이가미 2021. 11. 10. 01:35

 차라리 걸어가는 게 빠르겠다. 길이 막히거나 거리가 아주 가까울 때 입 밖으로 나오곤 하는 말로, 보통의 경우 과장이 한 스푼 섞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아키타와에서만큼은 한 치의 거짓을 보태지 않은 사실이었다. 작은 섬마을 아키타와에는 섬 외곽을 도는 단 한 개의 버스 노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단 한 대만이 운행 중인, 그야말로 시골 버스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십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생김새의 낡은 버스는 하루에 몇 번씩 시원찮게 털털거리며 조용한 시골길을 갈랐다. 운전기사가 단 하나뿐이니 배차 간격이 좁을 수가 없었다. 섬의 하나뿐인 기사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달리고 이른 아침이나 점심 식사 시간, 늦은 밤에는 굴러가는 법이 없는 버스였다. 간혹 기사가 늦잠을 자거나 가족 행사라도 하는 날에는 쉽게도 들쑥날쑥해져 버리고 말았다. 배차 간격과 운행 시간 모두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낡은 그 버스는 냉난방은커녕 창문조차 성하지 않아 여름날에는 찜통이 따로 없었고 겨울이면 살을 에듯 추웠다.

 이처럼 육상 교통수단이 열악한 탓에 아키타와의 아이들은 버스보다도 배가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다 배차 간격마저 엿가락마냥 늘어지게 긴 버스는 양 손에 무거운 물건이 있을 때나 운이 좋게도 저 멀리서 오는 버스가 보일 때 이용하는, 다소 비일상적인 교통수단이었다. 바쁘지 않은 노인들이 주고객층인 그 버스 안에는 늘 다섯 명이 채 되지 않는 손님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그들의 전부가 버스 기사와 구면이었다. 버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일은 아침에 일이 있으니 일찍 출발해 달라는 할아버지의 요구와 웃음기 섞인 대답으로 이를 대강 받아넘기는 기사의 대화도 심심찮게 들려 왔다.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에서 세워 달라는 건 양반이었다. 그런 면만 두고 보면 도시의 택시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독히 불편한 것을 빼고는. 그 버스가 만원인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처음으로 도시의 버스에 올라탄 미노루의 눈은 전에 없이 놀란 기색을 띠었다. 재수없게 퇴근 시간과 겹친 탓에 사람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찬 그 버스는 미노루가 십팔 년간 보아 온 것과는 달라도 그리 다를 수가 없었다. 일행인 쇼우네이가 그의 팔을 잡아 버스 안으로 이끌 때까지 미노루는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버스 안의 사람들을 쳐다볼 뿐, 버스에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가운 눈총을 받아내며 가까스로 버스에 오른 미노루의 등 뒤로 출입문이 힙겹게 닫혔다. 새로이 탄 사람들 탓에 이제는 숨 쉴 틈조차 없어진 기존 탑승자들이 끙끙대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치 아우성처럼 울려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뿜어대는 후끈한 열기 탓에 여름을 맞아 에어컨을 최대 출력으로 가동 중인 버스 안은 에어컨 따위 없는 아키타와의 버스보다도 후텁지근했다. 주위 사람이 저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노루에게로 엉겨붙으며 반팔 소매 아래의 끈적한 살이 맞닿았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들러붙어 온다는 것은 저보다 바로 앞서 탄 쇼우네이와도 딱 붙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쇼우네이가 도시의 버스를 처음 타 보는 미노루를 살핀답시고 용케 미노루 쪽으로 돌아선 탓에 둘은 마주선 채 그야말로 꼭 달라붙어 있었다. 둘 사이에는 한치의 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기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서로의 몸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뜨끈한 열기에 숨이 막혔다. 미노루는 애써 고개를 돌려 쇼우네이의 시선을 피했다.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둘 사이에 더없이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말 것이었다. 내릴 곳까지 남은 것은 세 정류장.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코앞에 있는 쇼우네이와 눈을 마주하지 않고 십 분만 버티면 이 숨막힘도 끝이었다.

 버스가 꽉 막힌 퇴근길을 뚫고 한 정류장을 달리는 사이, 문득 쇼우네이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와 달리 버스를 타 보았을 법한 쇼우네이가 그 상황에 적응하다못해 심드렁한 얼굴일지, 아니면 저처럼 쭈뼛거리며 한껏 고개를 돌리고 있을지. 참으로 쓸데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가 쇼우네이가 아니라면 생겨나지조차 않았을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고개를 돌려 볼까, 아니면 조금 더 버틸까. 별 것도 아닌 고민을 하는 사이 버스는 또 한 정류장을 지나 마지막 정류장만이 남았다. 내릴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을 괜히 조급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미노루가 그 조급함과 호기심에 못 이겨 쇼우네이 쪽으로 슬며시 고개를 돌리던 그 때였다.

 

"……!"

 

 놀라 새어나오려는 숨을 가까스로 삼킨 바로 앞에는 쇼우네이가 미노루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로이 타는 사람들의 등쌀에 더 이상 가까워질 데도 없을 것만 같던 둘의 거리가 더 좁혀지며 두 코끝이 살며시 맞닿았다. 미노루는 얼어붙어 돌아갈 생각을 않는 고개로 시선을 피하지도 온전히 받아내지도 못한 채 눈을 내리깔았다. 코끝이 스치며 쇼우네이의 따뜻한 숨결이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온몸의 땀구멍에서 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왔다. 후텁지근한 여름 공기 탓인지 제 앞에 꼭 붙은 쇼우네이 탓인지 모를 땀이 어느새 제 몸을 엷게 적셔들어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대며 온몸의 피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달음질쳤다. 딱 미칠 것 같았다.

 바로 그 때, 쇼우네이의 고개가 기울어지며 미노루와 점차 거리를 좁혔다. 딱 삼 센티미터쯤 떨어져 있던 둘의 입술이 살며시 맞닿았다. 온몸에 뜨겁게 열이 오르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어질어질하면서도 피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만히 입술이 맞닿은 채 코끝을 간질이는 서로의 숨결만을 느낄 뿐, 그 이상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의식이 날아갈 듯한 달큰함에 흠뻑 취해들었다. 누구 하나 저들에게 고개를 돌릴 틈이 없는 만원 버스안에서는 둘만의 세계에 퐁당 빠져들기도 쉬웠다. 그 아찔한 와중에도 둘의 머리는 어떻게든 입맞춤의 핑곗거리를 찾기 바빴다.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만원 버스 때문이야.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후텁지근한 여름 공기 때문이야. 결코 저들의 탓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순간 넘쳐흐른 탓이 아니었다. 아직 제 마음을 온전히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 소년들은 언제고 핑계 대기를 잘 했다. 둘 중 누구 하나 입술은 떼지 않으면서도.

 쏜살같이 지나 버린 듯 아쉬우면서도 억겁의 시간이 흐른 듯 아득하던 입맞춤은 버스가 그들이 내릴 정류장에 도달하고서야 끝이 났다. 버스에서 어떻게 내렸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서로를 놓치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며 두 손을 마주 잡은 기억만이 선명했다. 만원 버스에서 빠져나가니 비로소 땀에 젖은 몸을 여름 공기가 스쳐지났다. 분명 덥고 습한 바람이건만, 그것이 조금 시원하게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뜨뜻하면서도 조금은 촉촉한 여름날의 설렘을 버스 안에 두고 내린 탓이었다. 애써 시선을 피하는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둘 중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둘 중 누구도 손을 놓지 않았다. 맞잡은 두 손 사이에 엷은 땀이 배어들었다. 어느새 새로이 불어 온 낯설고 간지러운 바람이 둘을 감싸며 열기를 더해갔다. 마치 뜨뜻미지근한 여름날의 한 조각을 베어낸 듯 후텁지근한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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